역시 사람에게는 직감이라는 게 있는가 보다. 그날 아침 나는 김두한(金斗漢) 의원에게서 다소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김 의원은 흰 보자기에 싼 두개의 통을 양손에 들고 의사당으로 들어왔다. 나이 차이는 좀 있었지만 나는 평소 김 의원과는 아주 가까운 친구처럼 지내 왔다. 그래서 스스럼없이 김 의원에게 물었다.
“김 의원 그거 뭡니까?” “아, 이거 사카린이야.” “나는 그거 구경도 못했는데 한번 봅시다.” 내가 그 통에 손을 대려 하자 김 의원은 “안돼! 나중에 어차피 보게 될 텐데”라며 내 손을 막았다.
펄쩍 뛰는 모습이 평소 김 의원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그러나 나는 잠시 후 내가 해야 할 대정부질문에만 온통 신경을 쓰고 있었던 탓에 더 이상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나와 김대중(金大中) 의원의 발언이 끝난 뒤 드디어 김두한 의원이 발언대에 올랐다. 김 의원은 두 개의 통을 연단 위에 조심스레 올려 놓았다.
의석에 앉아있던 여야 의원들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마침내 김 의원이 입을 열었다. “배운 게 없어서 말은 잘 할 줄 모르지만, 다른 사람이 할 줄 모르는 행동은 잘 할 수 있습니다.”
김 의원은 자신의 항일 투쟁, 반공 투쟁 경력 등을 소개하며 조금씩 목소리를 높였다.
“5ㆍ16 군사혁명을 일으킨 현 정권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또 국민의 참정권을 박탈하는 것 까지는 용서할 수 있으나, 전 국민의 대다수를 빈곤으로 몰아넣고 몇 놈에게만 특혜조치를 주고 있는 건 용서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여기 나왔다면 한번 따지고 싶지만 없으니 국무총리를 대통령 대리로 보고, 또한 총리와 장관들은 3년 몇 개월 동안 부정과 부패를 합리화한 피고로 다루겠습니다.”
이윽고 김 의원은 연단 위에 높여져 있던 통을 들었다.
“이것은 재벌이 도적질해 먹는 것을 합리화시켜주는 내각을 규탄하는 국민의 사카린이올시다.” 김 의원은 갑자기 그 통을 국무위원석으로 냅다 집어던졌다.
“똥이나 처 먹어, 이 새끼들아. 고루고루 맛을 봐야 알지.” 정일권(丁一權) 총리 등 국무위원들은 미처 피할 틈도 없이 인분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의사당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코를 찌르는 냄새가 의사당에 가득했다. 곧바로 정회가 선포됐다.
그날 바로 정일권 내각은 이에 항의해 일괄 사표를 제출했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이 사건을 개탄하는 특별공한을 국회에 보냈다. 국민들은 모두 속시원하게 생각했지만 국회의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아무리 그래도 국회에서 그럴 수 있느냐”는 분위기가 퍼지면서 결국 김 의원은 제명됐다.
아무튼 김두한 의원의 오물 투척으로 국민의 관심을 더욱 끌게 된 한비 사카린 밀수사건은 민복기(閔復基)
법무장관, 김정렴(金正濂) 재무장관의 해임으로 이어졌고, 이병철(李秉喆)씨의 둘째아들인 이창희(李昌熙)
씨가 구속됐다. 또 삼성은 한비 주식의 51%를 정부에 헌납했다.
나중에 박 대통령에게 직접 들은 얘기인데 주식 51% 헌납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장기영(張基榮) 부총리가 전체 주식의 51%가 아니라 이병철씨 개인 지분의 51%만 헌납하겠다는 결재 서류를 갖고 왔다는 것이다. 당연히 박 대통령은 노발대발했다. “도대체 삼성이 나를 속이려는 건가, 약속 위반이 아닌가.”
결국 처음 약속대로 한비 주식의 51%는 정부에 넘어갔다. 이처럼 이 때만 해도 박 대통령은 재벌의 횡포와 부정을 아주 싫어했다. 그러나 장기 집권의 길로 들어가면서 이런 자세도 점차 변해갔다.
이 사건은 김두한 의원의 정치 인생은 물론 자연인으로서의 삶에도 치명타를 안겼다. 다음 회에 자세히 쓰겠지만 김 의원은 이로 인해 몸과 마음이 완전히 망가졌다.
당시 박 대통령 다음의 최고 권력자였던 김종필(金鍾泌) 의원을 견제하는 데에 김형욱(金炯旭) 중앙정보부장 등이 이 사건을 이용한 탓이다. 권력 내부의 파워 게임이 한 사람의 인생에 결정적인 타격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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