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인사청문회란 개인 검증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인사청문회에서 공개적으로 불거지는 여러 현안과 관련해 사회성원 모두가 정보를 얻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국민이 사회문제에 대한 의식을 형성하고 여론을 조성하는 시민교육의 장이 인사청문회에서 펼쳐질 수 있는 것이다.
인사청문회(미국의 경우 인준청문회)가 가장 활성화해 있는 미국의 예를 보자. 1991년 토마스 대법관 지명자 인준청문회는 성희롱에 대한 미국인의 인식을 크게 바꾸었다.
성희롱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여성계가 단합해 다음 해 선거에서 유례없이 많은 여성의원을 배출함에 있어서 그 청문회가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이다.
1980년대 후반에는 타워 국방장관 지명자의 음주벽이 인준청문회에서 문제가 되어 음주에 대한 사회적 자각이 이뤄졌다.
또 1993년 최초의 여성 법무장관으로 지명된 베어드에 대한 청문회에서는 불법체류자의 고용, 개인적 고용인에 대한 세금문제가 중요한 사회쟁점으로 떠올랐다.
그 외에도 수많은 미국 의회의 인준청문회를 통해 지명자 개인문제가 사회현안으로 설정되고 이에 따라 시민의식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인준청문회가 완전히 공개되고 미국 언론이 도가 지나칠 만큼 집중 보도한다는 점에서 청문회가 지명자 검증뿐 아니라 ‘국민의 정치사회화’ 기능도 수행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토마스 대법관 인준청문회 시에는 주요 TV방송사가 근 일주일간 인기 드라마들을 중단하고 청문회를 생방송 했을 정도다.
이번 장상 국무총리 서리 인사청문회가 시민교육 기능을 제대로 수행했는지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다. 좀 더 시간이 흐른 후 사회상황과 여론을 살펴봐야 한다. 그렇지만 성급한 판단을 굳이 내려보자면 결코 만족스런 평가가 나올 것 같지 않다.
물론 한편으로 보면 몇몇 현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환기되었다. 과연 서리(署理)제도가 정당한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었고, 권위주의 시대부터 시작된 이 관행을 이젠 재고해야 한다는 의식이 퍼졌다.
국적문제,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친일인사 기념사업 등의 사안뿐 아니라 여성도 최고 공직자를 맡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국민이 나름대로 생각을 정립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부분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번 총리 인사청문회가 시민교육의 장으로 승화되기에는 제약이 너무 컸다. 우선 이틀이라는 기간이 너무 짧다.
여러 현안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기보다는 피상적으로 제기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
필요하다면 수주 이상 계속되며 여론을 주도하는 미국 인준청문회와 대조를 이루었다. 지난번 이한동 총리 인사청문회 때 이틀이란 기간에 대해 비판이 제기됐지만 시정되지 않았다.
미국처럼 해당 상임위가 아니라 급조된 특별위원회가 청문회 실시의 주체였다는 한계도 지적할 수 있다. 특위는 의결권이 없고 조사 및 보고 권한만 갖는다.
따라서 각 위원이 상대적으로 큰 책임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고, 자기 역할에 대한 높은 충실성과 진지성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특위가 활용할 수 있는 보좌 인력이 과연 충분했는지도 의문이다.
무엇보다 질의를 던지는 의원들이 당파성을 탈피하지 못했다는 점이 결정적 제약요인으로 작용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은연중 감싸는 듯한 태도를 숨기지 않았다. 핵심 쟁점을 비껴가는 모습도 보였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8·8 재보선과 대선을 대비한 계산 때문인지 민감한 사안을 신랄하게 파헤치지 못했다. 자칫 여성표를 잃을지 모른다는 판단, 자기 당 대선후보에게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을 것이다.
인사청문회를 좁게 이해한다면 지명자의 국정수행 능력만 검증하면 된다. 그러나 넓은 의미의 인사청문회는 시민교육의 장이어야 한다.
사회 일각에서 의혹이나 의문을 품는 사안이 있다면 충분한 질의응답을 통해 사회현안으로 상정시키고, 그에 대한 국민의 의식을 제고 시켜야 한다. 그러한 기회를 이번에 또 놓친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임성호 경희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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