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고심 끝에 31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무장관 회의에서 밝힐 서해교전 언급 수위를 정했다.정전협정 위반인 점을 지적하면서 우려를 표명하되, 책임 소재를 따지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북측이 이 수준에서 교전을 둘러싼 논란을 매듭지을 경우 이번 ARF에서 남북 외무장관 회담도 열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서해교전 평가
정부 방침은 최근 북측의 유감 표명으로 조성된 대화국면을 어떻게 든 살리겠다는 쪽에 힘이 실려있다.
ARF 한국대표단 관계자는 “최근 북측의 유화적 제스처를 일방적으로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남북이 신뢰구축의 장인 ARF 회의장에서 으르렁대는 모습을 보여서는 곤란하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의 태도는 국내적으로 서해교전을 북측의 의도적 도발로 규정하고서도 국제회의 석상에서는 언급조차 못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다.
■북측 대응수위
북한 백남순(白南淳) 외무상이 31일 최성홍(崔成泓) 외교부 장관의 이 같은 서해교전 평가에 어떻게 대응할 지도 관심사이다.
백 외무상이 우리측의 정전협정 위반 언급에 북방한계선(NLL)의 법적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최근 일련의 태도를 감안하면 유감 표명을 반복할 공산이 커 보인다.
일각에서는 백 외무상이 한걸음 더 나가 재발방지책 마련을 위한 원론적 입장을 피력할 수도 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남측과 재발방지 대책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는 이고리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의 전언도 이 같은 예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남북 외무장관회담
정부는 이번 ARF 회의에서 우리측이 먼저 북측에 외무장관 회담을 제의하지는 않겠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북측이 제의해오길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이다.
정부가 선(先)제의를 꺼리는 것은 무엇보다 ‘서해교전을 일으킨 북한에 고개를 숙였다’는 국내 보수진영의 반발을 우려한 측면이 강하다.
최성홍 외교부 장관도 “아직 계획이 없다”면서 “(백 외무상과) 옆 자리에 앉게 되니 인사말은 하게 될 것”이라고 발을 뺐다.
정부는 그러나 북미 외무장관 회담 개최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에서 북측을 마냥 외면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정부 당국자는 “자연스럽게 회담 여건이 조성되면 회담을 하지 안 할 이유는 없다”면서 “결국 북측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미국측도 1차적인 이해 당사자인 남북 외무장관 회담이 성사돼야 북한과의 회담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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