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아침을 열며]햇볕정책과 북한의 '他者化'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햇볕정책과 북한의 '他者化'

입력
2002.07.31 00:00
0 0

북한이 서해교전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장관급 회담 개최를 제의해 왔다.여당은 일단 ‘미흡하지만 수용’을 주장하고, 야당은 분명한 ‘사과’를 포함한 재발방지 약속이 선행되지 않는 한 수용불가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정부는 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접촉 일자를 북측에 통보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서해교전 직후 일본을 방문했을 때 햇볕정책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다른 한편 정부는 국민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북한에 제공하기로 한 경제지원을 동결하기로 했다. 거시적 차원에서 정부의 일관된 햇볕정책 그리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된 적정 수준의 응징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는 평소에 ‘햇볕정책’이라는 단어에 묘한 거부감을 느껴 왔다.

햇볕정책이 흡수통일을 명시적으로 배격하고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과거보다 진일보한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햇볕정책이 함축하는 의미는 북한을 통일의 한 주체로 파악하기보다는 여전히 통일의 대상으로 파악한다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분단 이래 적대적 대치 상황에서 역대 남한정부는 북한을 ‘문명적’인 화해와 협력의 파트너가 될 수 없는, 곧 변화의 여지가 없는 ‘절대적 타자(他者)’로 호명해 왔다.

한국전쟁 이후 널리 회자되던 ‘무찌르자 오랑캐’라는 말이 상징하듯이, 북한 공산주의는 ‘야만(족)’으로 치부되어 왔던 것이다.

본래 오랑캐란 중화사상에서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이분법으로서 변방민족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나아가 최근 북한은 세계의 패권국가 미국의 대통령이 규정한 바에 따라 ‘깡패국가’ 또는 ‘불량국가’(rogue state)라는 새로운 명칭을 얻게 되었다.

서구화의 진척과 함께 이제는 북한을 미국식 호칭에 따라 ‘불량국가’라고 부르는 국내의 정치학자들도 적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호칭들이 북한을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태도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햇볕정책 역시 문제가 있다. 북한에 대한 화해와 협력을 일관되게 추구하는 햇볕정책의 기본 정신은 존중할 만하지만, 햇볕정책 역시 북한을 통일의 과정에서 긴밀히 협력해야 할 대등한 파트너로 설정하기보다는 통일의 수동적인 대상으로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햇볕정책이라는 명칭이 근거하고 있는 이솝우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바람과 해가 지나가는 나그네의 옷을 누가 먼저 벗길 것인가라는 내기로 시작하는 이솝우화에 따르면 일견 바람의 전략이 강압적이고 해의 전략이 자율적인 것 같다.

하지만 더위에 못 이겨 옷을 벗었다면 해의 전략 역시 결코 나그네의 자발적 협조와 설득에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기의 기본적인 가정은 나그네가 애당초 겉옷을 벗을 의사가 없다는 것이며, 그렇지만 바람과 해가 옷을 벗기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 가정을 햇볕정책의 대상인 북한에 적용하면, 북한은 애당초 화해와 협력의 의사가 없다는 가정이 나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햇볕정책에 따라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하는 대상이 된다.

따라서 햇볕정책의 대상이 되는 북한으로서는 명시적인 화해와 협력의 메시지는 반길지 모르지만, 거기에 담겨 있는 함의, 곧 북한이 화해와 협력의 자발적인 의지가 결여된 단순한 대상이라는 함의에 대해서는 결코 달갑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햇볕정책은 남북관계에 전개되는 화해와 협력의 공을 상대방인 북한을 제쳐놓고 남한 정부가 독점하려는 독선적인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정책 당사자 입장에서는 모든 정책에서 상대방을 불가피하게 객체로 상정하고 출발하겠지만, 그 정책의 명칭에서부터 명시적으로 상대방을 수동적인 대상으로 설정하는 것은 호혜와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

하물며 상대방이 흡수통일의 단순한 객체가 아니라 대화와 협력을 통한 통일의 한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강정인 서강대 정외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