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보복관련 조치들이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느냐 못 거두느냐는 입법자들의 사려 깊은 체계적 지식보다는 그때 그때의 상황변동에 의해 사고방식이 지배되는 정치인이라 불리는 ‘음흉하고 교활한 동물’(insidious and crafty animal)의 기교에 달려 있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의 명저 ‘국부론’ 제4편 제2장에 나오는 글이다.정치인이 음흉하고 교활하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문제는 우리 정치인들이 음흉하고 교활한 것 못지 않게 근시안적이고 대중영합적이라는 점이다.
2년 전에 중국과 타결한 마늘협상을 놓고 최근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정부가 기업에 주문해 온 투명경영 못지않게 정부의 투명행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교훈으로 남긴 채 마늘파동은 일단 수그러들었다.
투명행정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 마늘파동으로부터 투명행정의 교훈만 얻어서는 안된다. 앞으로 불가피하게 닥치는 농업개방에 대한 일반원칙을 정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값싼 중국산 마늘의 급격한 수입확대로 국내 마늘산업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무역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정부가 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한 것은 전혀 책잡을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중국은 즉각 우리나라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의 수입중단이라는 초강수 보복조치를 취했다.
당황한 우리에게 중국은 그 당시 자기네가 세계무역기구의 회원국이 아니라는 점을 십분 활용해 마늘 긴급수입제한조치의 연장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도록 압박했다.
이런 ‘교활한’ 중국정부의 ‘기교’에 대해 우리 정부는 소탐대실의 우(愚)를 범할 수는 없다고 ‘사려 깊게’ 판단하여 국익보호 차원에서 중국과 협상을 타결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2년반 후에 긴급수입제한조치를 연장할 수 없다는 부속서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것이 첫 번째 잘못이다.
이는 통상관료들이 당장의 여론질타를 피하고 보자는 교활한 정치인 기질을 발휘한 것이다. 아니면 머지않아 들통나게 마련인 사안의 중요성을 도외시한 근시안적 정치인 기질이 드러난 것이다.
마늘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대책을 수립하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잘못이다. 긴급수입제한조치는 길어야 8년이다.
그 안에 중국의 값싼 마늘에 경쟁할 수 있도록 장단기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여기에는 현재의 50만 마늘농가를 대폭 축소 조정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런 대책을 세우는 노력을 진지하게 기울였다면 단기대책의 포괄기간이 8년이 아니라 2년반이라는 사실이 진즉 공유되었을 것이다.
실상 마늘은 약과이다. 마늘보다 훨씬 중요한 쌀에 있어서도 장단기대책이 전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가 출범하면서 쌀시장 개방은 10년간 유예되었다. 10년이 지나는 2004년에 시장개방이 좀 더 유예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봤자 고작 몇 년이다.
개방은 시간문제라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지난 7년 동안 일본은 쌀값을 내리며 개방에 대비해 왔다. 우리나라는 거꾸로 쌀값을 올려 왔다. 정부수매제를 공공비축제로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그때 시행하겠단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은 이런 정부의 근시안적 자세와 무대책을 질타하는 대신 부채질해 왔다. 추곡수매가 인상에 앞장서고 마늘재협상을 요구한 것이 이들이 한 일이다. 사려깊은 입법자의 지식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중국의 우악스런 조치는 비교우위의 이론과 사려 깊은 체계적 정책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한다.
휴대전화 등의 수출회복이 국익을 들먹일 정도로 그렇게 이득이 크다면 희생양이 된 마늘농가와 농촌에 대해 해당 제조업이 이득의 일정부분을 출연케 해야 한다. 그것이 최소한의 공동체의식이고 형평감각이다.
한편으로 정부차원의 마늘농가 지원은 언제까지 한시적이라는 것을 밝히고 그대로 실시해야 한다. 이런 식의 대내이익 조정과 도덕적 해이 방지가 자유무역협정이나 농업개방의 두 기둥원칙이 되어야 한다.
사려 깊은 체계적 지식은 외면하고 ‘음흉하고 교활한 동물’들의 대중영합적인 기교만 판치는 세태가 언제쯤이나 사라질 것인가?
/안국신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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