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1996년이었다.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에 입단했으나 난생처음 2군으로 추락하기까지 했다. 밤잠을 설치며 분석해도 부진의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볼의 위력은 국내에서 뛸 때와 큰 차이가 없는데 일본타자들이 용케 잘 친다는 생각뿐이었다.한참이 지난 후에 이유를 알았다. 스프링캠프기간 타구단의 스파이들이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파악했기 때문이었다(각 구단은 타구단의 정보를 수집하는 분석요원을 여러명 보유하고 있다). 스파이들은 직구와 변화구를 던질 때의 미묘한 투구폼 차이까지 잡아냈다.
모리 마사아키라는 야구감독이 있다. 80년대 후반 퍼시픽리그 세이부 라이온즈 감독으로 활약하며 팀을 최강으로 만들었던 명장이다. 그는 “감에 의존하는 야구는 오래 갈 수 없다.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데이터와 확률이다”고 말했다.
87년 모리 감독은 홈런왕출신의 오 사다하루(王貞治) 감독이 이끄는 명문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일본시리즈에서 격돌했다. 오 감독은 “4승1패로 끝내고 싶다”며 우승을 자신했다. 반면 모리 감독은 “한수 배우는 자세로 임하겠다”며 몸을 낮췄다. 결과는 속내를 감춘 모리 감독의 승리였다.
모리 감독이 오 감독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데이터와 확률이었다. 전문가들이 요미우리의 괴물투수 에가와의 1차전 선발등판 여부에 관심을 둘 때 모리 감독은 센트럴리그 방어율 1위 구와타가 선발로 나설 것으로 확신했다. 요미 우리 타선이면 세이부투수들을 공략할 수 있다고 보고 방어율이 제일 좋은 구와타를 중용할 수밖에 없는 오 감독의 마음을 간파했다.
예상대로 구와타가 1차전 선발투수였다. 모리감독은 1차전 선발투수로 경력 19년의 베테랑 히가사오를 마운드에 올렸다. 상대타자들의 약점을 파악하는 게 그의 임무중 하나였다. 몸쪽 볼에 약하다는 데이터를 얻은 모리 감독은 이후 요미우리를 연파, 일본시리즈정상에 올랐다. 히가사오는 “1차전에서 비록 졌지만 더 큰 것을 얻은 덕분에 정상에 오를수 있었다”고 후일담을 털어놨다.
야구에는 “데이터와 확률을 무시하지 말라”는 불문율이 있다. 감에 의존하는 것보다 성공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나도 현역시절 데이터를 맹신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서 만난 타자가 누구이든 예전에 무슨 구질의 볼을 어느 코스에 던졌는가를 불펜에서부터 머리 속에 그리며 마운드에 올랐다. 지금도 기본을 도외시한 채 목표를 달성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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