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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진출 '오아시스'주연 설경구/"이창동감독을 믿고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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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진출 '오아시스'주연 설경구/"이창동감독을 믿고 연기"

입력
2002.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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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심한 소년의 ‘소사(小史)’5일이 오면 긴장하는 학생이 있었다. 선생님이 ‘5번, 15번’ 식으로 책읽기를 시키기 때문이다. 책을 들고 서면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연출가가 되려고 한양대 연영과에 입학했다. ‘군복이 교복’인 학교에 영화배우같은 여자애들은 없었다.

내심 실망했다. 그리고 “연출하려면 연기도 해봐야 한다”는 선배 말에 무대에 섰다. 얼굴 근육이 마비됐다.

그런데 한 일주일 지나니 괜찮아졌다. 그래서 한양래퍼토리 무대에 섰다. 후배가 사온 마주앙 1병을 다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95년 ‘꽃잎’에서 대학생의 일원으로 ‘아르바이트’ 했다.

“배우야?” 누군가의 소개를 받고 영화사를 찾아가면 감독 대신 연출부 스태프들이 그의 얼굴을 보고 이런 말을 했었다.

그리고는 어떤 역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말도 따라왔다. 그러나 ‘박하사탕’ 이후에는 “세 남자 중 맘에 드는 것 골라보라”는 식으로 말을 한다. ‘후광’이란 그런 것이다.

●‘박하사탕’ 그 달디 단, 쓰디 쓴

설경구(34)의 후광은 물론 ‘박하사탕’(99년)에서 왔다. 그건 그만큼 ‘박하사탕’이 그에게 큰 짐이 된다는 얘기도 된다.

반에서 10등도 못하던 학생이 전국 경시대회에서 1등한 기분? 놀란 사람들은 또 놀라는 대신, ‘그것 봐라’하는 비아냥을 던지고 싶을 지도 모른다.

세상이 두려울 법하다. 아무튼 그는 누군가의 말처럼 ‘한 방으로’ 일어섰다. “아직도 박하사탕 콤플렉스는 그대로 있다.

그건 아마 극복되지 못할 지도 모른다. ‘공공의 적’으로 백상예술상 대상을 받았을 때 더 기뻤던 이유는 콤플렉스 때문이다.”

이창동 감독이 ‘멜로’라고 주장(감독을 아는 사람들은 예쁜 멜로 영화와는 거리가 멀 것이라고 생각한다)하는 ‘오아시스’의 주연으로서 그가 감독을 표현하는 말은 ‘변태’다.

“감독과 일년에 두 편의 영화를 찍으면 아마 정신병 걸릴 것이다. ‘슬픈 엉덩이’같은 무책임한 지문! 여기에 “관객은 내면을 모를거야. 나도 모르겠지. 그런데 우리끼리는 속이지 말고 한번 해보자” 거나 “울음이 터져도 여기에는 네 가지 감정이 들어있거든, 근데 이번에는 3번이 빠진 것 같아” 이런 식이다. 진짜 변태다. 아마 이런 ‘변태성’이 27일 개막하는 베니스 영화제 본선에 ‘오아시스’가 진출한 힘이 됐을 지도 모를 일!”

●나의 사랑스런 변태, 이창동

그렇다면 그는 왜 ‘변태’와 두 번이나?

“처음엔 당연히 몰랐다. 이번에는 좀 역할을 만만하게 봤다. IQ 73의 지능은 낮지만 눈치는 빤한 종두, 폭력 강간미수 교통사고로 전과 3범인 종두, 나와는 전혀 전혀 접점이 없는 종두를 연기하는 것은 외줄에 선 심정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감독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배우가 버티고 있으면, 혹 그렇지 않아도 뭔가를 계속 만들어 줄 만한 그런 감독이었다.”

자신이 치어죽인 피해자의 정신지체아 딸 공주(문소리)를 위해 꽃을 사가는 종두, 공주가 ‘함께 자자’고 하니까 다짜고짜 옷을 벗고 관계를 시작하는 종두.

설경구는 ‘박하사탕’의 영호나 ‘공공의 적’의 강형사가 자신과 닮은 점이 있다면, 종두의 내면은 이창동 감독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건 감독도 마찬가지여서 “경구 너와는 하나도 닮은 게 없다. 하기 싫으면 안해도 된다”고 했고, “설경구가 안하면 내가 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결국 설경구는 이창동의 영화적 상상력을 표현하는 육체다. ‘오아시스’를 “찐한 멜로”라고 말하는 것도, 이창동을 닮았다.

●오아시스요? 그것처럼 허망한 게…

그는 요즘 김상진 감독의 ‘광복절 특사’를 촬영 중이다. “이번 영화와 다음 영화는 좀 달랐으면”하는 생각에 코미디를 골랐다.

“문소리를 만난 건 이창동 감독의 행운”이라며 문소리 얘기를 하더니 “차승원은 애드립에 대한 반응의 1인자”라고 차승원을 칭찬한다.

여유있다. “영화를 찍고 나니 찜질방, 여관, 룸살롱 이름에 오아시스가 많더라. 하지만 나는 오아시스를 찾지는 않을 것이다.

허무하고, 없을 수도 있고, 무의미하다. 목표를 정해두고 살면 재미가 없을 것 같다.” 그는 그냥 배우라서…행복하기 때문이다.

박은주 기자

■'오아시스'는 어떤 영화

’97년 ‘초록물고기’, 99년 ‘박하사탕’을 선보이며 작가주의적 영화의 지평을 넓혀온 이창동(48) 감독의 세 번째 영화.

일종의 사회부적응자인 종두(설경구)가 교도소 출소 직후 자동차 사고로 죽인 피해자의 딸 공주(문소리)를 찾아가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공주는 중증정신지체 장애자. 사회와 육체에 적응하지 못하는 두 사람의 독특한 사랑이야기이다. 지난해 12월 14일 첫 촬영을 시작, 5월말 촬영을 마쳤다.

종두가 공주를 안고 노래를 부르는 환상장면을 위해 국내 최초로 청계고가를 통제하고 촬영을 했으며, 결말 부분 판타지 장면을 위해 태국 로케이션을 하기도 했다.

순제작비는 19억원으로 10억 내외로 작품을 찍어온 이창동 감독으로서는 큰 예산의 영화. 베니스 영화제는 마감을 두 차례나 연장하며, 이 작품을 본선 경쟁작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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