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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이만섭/(1)연재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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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이만섭/(1)연재를 시작하며

입력
2002.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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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나는 잠시 숨을 멈춰야 했다. 본회의장에 앉아있는 의원들 뿐 아니라 수많은 국민들의 눈길이 느껴졌기 때문이다.나는 탁자 오른쪽에 놓여 있는 의사봉을 한번 내려다 본 뒤 다소 톤을 높이며 말을 이어갔다.

“저는 이 국회가 어느 정당의 국회가 아니라 바로 국민의 국회라는 소신을 갖고 공정하게 국회를 운영해 왔습니다. 이 자리에서 의사봉을 칠 때 한번은 여당을 보고, 한번은 야당을 보고, 그리고 마지막 한번은 방청석을 통해 국민을 바라보며 양심의 의사봉을 쳤던 것 입니다.”

지난 7월8일 16대 전반기 국회의장직을 물러나면서 의원들과 국민에게 드린 고별 인사였다. 이 내용은 2000년 5월31일 16대 국회가 개원할 때 국회의장에 취임하면서 국민에게 한 약속이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조금씩 떨렸지만 마음은 한없이 평온해졌다. 국민을 위한, 국민의 국회를 만들겠노라고 몇 번이고 다짐했던 2년 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국민들도 그 때 그 모습을 기억할 것이라 생각됐다. 역사 앞에 한 맹세를 용케도 잘 지켜낸 나 자신에게 대견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돌이켜보면 16대 국회 전반기 2년은 여야간의 대립과 충돌로 국민에게 참 많은 꾸지람을 들었다. 그렇지만 우리 국회의 고질병 ‘날치기’가 없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과거 어느 국회보다 큰 성과가 있었다고 자부한다.

국회의장이 당적을 이탈토록 한 것이나, 자유투표제를 국회법에 명문화한 것도 헌정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사실 나는 국회의장에 취임하자마자 마음속으로는 당적을 떠났다. 불편부당한 국회 운영을 위해 국회의장은 당적을 갖지 않는 게 옳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본회의장에 들어가기 전에는 늘 잠시 눈을 감았다. 국민의 편에 서서 올바로 사회를 보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기 위해서 였다.

가슴 한 켠에는 마음의 사표를 써 두고 있었다. 국회의 권위와 나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언제든지 국회의장직을 그만 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회의장으로 있는 동안 날치기에 대한 압력과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이 덕분이다.

국회를 중립적으로 운영하면서 분에 넘치는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2000년 7월 국회 원내교섭단체 요건 완화를 위한 국회법 개정안 처리를 싸고 여야가 격돌했을 때 날치기 사회를 거부한 내게 쏟아진 국민의 격려는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국회 홈페이지에는 “만섭 오빠 사랑해요”, “만섭 오빠 파이팅” 등 격려 이메일이 봇물을 이뤘다.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오빠라니, 한편으로는 쑥스러웠지만 네티즌들의 성원은 큰 힘이 됐다. ‘내가 바른 길을 가고 있구나’하는 확신을 다시 한번 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같은 해 10월 박순용(朴舜用) 검찰총장, 신승남(愼承男) 대검 차장에 대한 탄핵소추안 처리를 놓고도 ‘국회법 대로’를 고집해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이 일들은 다음 기회에 상세하게 전할 예정이다.

고별인사를 마친 뒤 신임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에게 의사봉을 넘기고 국회의장석을 천천히 내려왔다.

의원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나는 오른손을 흔들어 보이며 의원들에게 답례했다. 박수 소리는 점점 커졌고, 나도 모르게 양 손을 번쩍 들어 의원들에게 인사를 했다.

“내가 하기는 제대로 했구나”하는 생각에 가슴 가득 기쁨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국회의장직을 물러났지만 나는 여전히 국회의원으로 정치 일선에 서 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내 인생을 차분히 정리하기 시작해야 할 때인 것 같다.

마침 한국일보가 ‘나의 이력서’를 연재하겠다고 하니, 이 기회를 통해 내가 살아온 길도 떠올려보고, 우리 정치사도 독자들과 함께 되돌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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