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오후, 성당의 고해실로 한 사나이가 뛰어든다. 여느 때처럼 편안하게 고해를 듣기 시작하던 신부의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 사나이의 고백이 많은 선량한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해를 입히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신부는 사나이가 고백한 내용을 발설해야 할지, 아니면 본분을 지켜 함구할지를 고민한다.”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지요. 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현행 의료법상 의사는 진료 중 알게 된 환자의 비밀을 누설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벌금형에 처하도록 돼 있습니다.
꼭 법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통해 환자의 비밀을 밝히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 건강보험공단이 운전면허 수시적성검사 대상자를 확보하기 위해 경찰청이 요청한 정신과 치료 병역자들 명단을 제공한 일이 있었습니다.
건강보험법에는 건강보험공단 직원이 업무상 알게 된 환자들의 비밀을 누설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위반시 처벌 조항은 없어 유야무야 넘어갔지요.
그러나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환자정보와 인권보호’라는 주제로 공청회를 열어 이 문제를 공론화했지요.
발표자들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환자의 비밀이 유출된다면 환자들이 의사를 불신하게 돼 진료를 기피하게 돼 국민 건강을 해치게 된다”며 “환자의 비밀 보호를 강제하는 조치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건강보험공단측에서도 할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정신과 병력이 있는 사람에게 순순히 운전대를 다시 잡게 하는 것은 선량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명단을 제공했겠지요. 그렇다고 해도 벼룩 한마리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권대익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