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잠을 설치게 만드는 모기가 극성이다. 그러나 주로 동아시아 지역에 서식하는 아시아 좀잠자리가 주변에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아시아 좀잠자리는 여름 한 철 1헥타아르의 공간에서 무려 100㎏의 모기를 먹어치우는 난폭자다.
잠자리가 모기를 먹는다는 사실도 새로운데 그 양이 무려 100㎏이라는 연구 보고는 잠자리에 대한 궁금증을 더하게 만든다.
신록이 푸르름을 더해가는 여름. 또 다시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매년 초여름과 가을이 되면 온 산하를 뒤덮는 잠자리떼다.
너울너울 네 날개로 날아다니는 잠자리는 흔하면서도 자연의 신비를 가장 극명하게 대변하는 곤충이다.
■잠자리의 연구 가치
잠자리는 날개를 가진 곤충 중 원시적인 무리에 속한다.
고생대 화석에서 발견되는 옛 잠자리 메가메우라는 날개를 편 길이가 60㎝에 달했다. 현재 볼 수 있는 잠자리가 대개 2~15㎝ 정도인 것에 비하면 익룡 수준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잠자리는 생물진화론을 입증하는 주요 생명체 중 하나라는 점에서 연구 가치가 크다.
생물진화론에서는 물 속에서 생겨난 생명체가 육지로 올라오면서 아가미 호흡이 폐 호흡으로 변하게 된다고 간주한다.
양서류인 개구리의 경우, 올챙이 때에는 아가미 호흡을 하다가 개구리가 되면 호흡기관이 피부와 허파가 되는 격이다.
잠자리전문가 이승모 전 대전 중앙과학관 자연사실장은 “잠자리 유충은 물에서 살지만 껍데기를 벗는 탈피를 위해서 뭍으로 나오면 몸이 마르기 전에는 아가미 호흡을 하다 어느 순간엔가 폐 호흡을 한다”고 말했다. 어류, 양서류, 파충류의 호흡기관 변화 연구의 중요한 소재가 된다는 것이다.
초식 곤충이 아니라는 점도 잠자리 연구의 중요성을 높이는 부분이다. 잠자리는 일생 동안 육식을 하는데 주로 물고기 알이나 치어, 모기 각다귀 등의 곤충을 잡아먹는다.
이들은 또 주로 물가에 살면서 개구리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생태계의 균형을 이루면서 먹고 먹히는 자연스러운 공생관계의 중간축이 되는 것이다.
■한국의 여름 잠자리
밤에 비해 낮의 길이가 긴 여름철은 각종 곤충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기다.
한국의 산들에서는 고운 맵시의 깃동잠자리, 밀잠자리, 된장잠자리를 시작으로 이제 곧 잠자리의 대명사 고추잠자리까지 선을 보이게 된다. 온 들녘 산기슭이 잠자리 천지다.
한국에 서식하는 잠자리는 대략 100여 종. 밀잠자리와 깃동잠자리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서 매우 흔한 잠자리 종류다.
우리나라 구릉과 산 계곡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깃동잠자리의 활동기간은 7월에서 10월 사이. 몸 길이 4.5㎝ 정도에 날개 끝 흑갈색 무늬가 인상적이다.
요즘 가장 흔한 잠자리는 된장잠자리다. 동남아가 원래 서식지였지만 1시간에 100㎞ 이상을 가는 속도로 계절풍을 타고 바다를 건너온 것이다.
이들 여름잠자리의 가장 큰 특징은 물구나무서기다.
파충류처럼 체온 조절이 되지 않기 때문에 태양의 뜨거운 직사광선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잎 뒤로 숨어 지면과 수직이 되게 물구나무를 선다. 햇볕에 닿는 면적을 최소화하기 위한 생존법이다.
26일부터 29일까지 대전국립중앙과학관에서 국제잠자리학회 동아시아 심포지엄이 열려 잠자리의 다양한 생태에 관한 연구논문 14편이 발표됐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 학자들의 논문 발표는 없었다. 잠자리 천지 한국의 잠자리 연구 현실이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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