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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피의 문화사/역사·문화에 스민 피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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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피의 문화사/역사·문화에 스민 피의 흔적

입력
2002.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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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문화사/구드룬 슈리 지음ㆍ장혜경 옮김/이마고 발행ㆍ1만2,000원피를 평온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피는 생명의 근원이자 건강을 찾아주는 붉은 영약임에 틀림없지만 죽음을 연상시키는 두려운 물질로도 다가오기 때문이다.

독일의 작가이자 언론인인 구드룬 슈리의 ‘피의 문화사’는 인간 역사와 문화 예술 곳곳에 스며있는 피의 흔적을 추적한 책이다.

책에 나오는 피 이야기는 매우 다양하다. 우선 의학에서는 피 뽑기가 널리 이용됐었다. 지금도 우리는 체했을 때 바늘로 손가락을 따 피를 뽑아내지만, 유럽에서는 18세기까지도 피 뽑기가 만병통치약이었다. 유해한 피를 배출해내면 질병을 거뜬히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는데 거머리를 이용한 피 뽑기가 유행했고 유럽의 숙녀들은 옷에 거머리 샘플을 달고 다닐 정도였다.

피를 토하는 결핵은 운명적인 몰락의 상징이 되면서 예술가를 괴롭혔다. 에밀리 브론테와 안네 브론테, 그리고 언니 샤롯 브론테도 결핵으로 목숨을 잃었고 안톤 체호프,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프란츠 카프카, D H 로렌스 등이 20세기 초반 결핵으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종교 또는 제사 의식에도 피는 등장한다. 힌두교의 칼리여신은 동물이나 인간의 피를 요구했고 고대로마에서는 제물의 피로 목욕을 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피를 대신해 포도주가 사용됐다.

전쟁터에서도 수많은 피가 뿌려졌다. 3차 카르타고전쟁에서부터 최근의 체첸전까지 900만명이 125만리터의 피를 흘리며 목숨을 잃었다. 나치는 게르만 민족의 혈통을 보존한다는 미명하에 많은 유대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책은 이밖에 마피아와 야쿠자의 피로 맺은 사이비 형제 관계를 지적하고 자칭 뱀파이어라는 영국인과의 인터뷰도 싣고 있다.

20세기 일부 예술가들이 자기 몸에서 피를 뽑아내 ‘작품’을 만들었다는 등 다소 엽기적인 내용도 들어있다. 그것은 인간의 어두운 면을 소재로 삼은 문화에서 피만큼 좋은 소재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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