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한국인 작가 이회성(李恢成)의 새책이 나왔다. ‘가능성으로서의 재일(在日)’.이 책은 이회성이 작가로 데뷔한 후 30여년동안 써 온 수필 서른 여덟 편을 엮은 것인데,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잔잔한 내용이 있는가 하면 논리적이고 역사적인 내용을 담은 것도 있어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름의 역사’라는 글이 있다. 저자는 청소년 시절을 보낸 삿포로에 강연을 하러가 옛 친구들을 만나고 술을 함께 마셨다.
그 자리에 있던 한 친구는 전에 그가 사용하던 ‘기시모토(岸本)’라는 일본 이름을 계속 썼다. 그 친구는 그 이름을 쓰지 않으면 예전의 정이 느껴지지 않고 낯선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지금 사용하는 한국 이름을 어려서부터 사용했더라면 저 친구가 그런 느낌을 가질 이유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당시의 저자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지금은 그런 자신을 후회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세월 먼 길을 돌아 그 미로에서 빠져나오려고 노력했던가.”
‘가능성으로서의 재일’이란 소제목을 단 글은 2001년 열린 ‘세계한민족포럼’에서 강연한 내용을 수정해 실은 것이다. 한국과 북한, 일본에 대한 비판이 날카롭게 전개된다.
“21세기를 살아갈 때 우리는 무엇을 경계해야 할까요? 민족지상주의에 함몰되는 것입니다.” “‘민족감정’과 ‘세계감정’을 동시에 갖는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이제부터는 매우 중요한 일이 되지 않을까요? 코리아 민족은 이런 ‘감정교육’을 받을 의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재일’은 민족통일의 ‘다리’라는 역할과 함께 ‘세계감정’의 전파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에서는 김사량(金史良)에서 시작돼 김달수(金達壽) 김학영(金鶴泳)을 거쳐 김석범(金石範) 이양지(李良枝)에 이르는 재일 작가들이 오랫동안 고뇌해온 ‘재일’이라는 아이덴티티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 아프게 느껴진다.
그리고 왜 그들은 그다지도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는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그 몸부림은 우리를 심히 부끄럽게 만든다. 우리는 그동안 재일 한국인들을 어떻게 보아왔던가.
혹시나 그 안에는 단순히 ‘반(半) 왜놈’이라는 말로 그들을 매도하는 시선이 숨어있지나 않았을까.
이 책은 지금까지 우리가 재일한국인이란 존재를 어떻게 인식해 왔었는가에 대해, 나아가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에 대해 엄중하게 질문을 던진다.
그 무거운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이제는 그 해답을 찾는 작업에 착수해야 할 때가 된 것이 아닐까.
/황선영 일본 도쿄대 비교문학ㆍ문화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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