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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상력의 극한에서 쓴 글들 …환상문학전집 1차분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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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상력의 극한에서 쓴 글들 …환상문학전집 1차분 나와

입력
2002.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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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영미문학 연구가 로즈메리 잭슨은 환상성에 대해 “익숙함과 안락함과 친밀함을 낯섦과 불안함과 기괴함으로 대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환상성은 그 기이함을 통해 사회의 금기를 넘고 위반을 저지르는 정치적인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환상문학전집’(황금가지 발행)이 출간됐다. 아직까지 우리 문학에서는 낯선, 환상성이라는 범주를 채택해 선정한 책들이다. “문학을 단순한 현실의 반영으로 보거나 지식의 형태로 보지 않고 상상력과 욕망의 결합으로 봄으로써, 기존의 편협한 문학 이해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각을 통해 작품을 펴낸다”는 게 기획 의도다. 인간의 상상력이 닿을 수 있는 가장 깊숙한 곳에서 나온 작품을 소개한다는 것이다.

1차분으로 7종 11권이 나왔다. E.T.A. 호프만, 호레이스 월폴, 에드가 앨런 포 등 괴기스러운 소설로 우리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작가들이다. 호프만이 1815년 발표한 첫 장편 ‘악마의 묘약’은 금지된 약물을 마시고 내면의 악마성과 마주한 수도사의 이야기다. 에드가 앨런 포가 남긴 유일한 장편 ‘아서 고든 핌의 모험’(1838)은 한 젊은이가 바다에서 난파돼 동료의 살을 뜯어먹으면서 목숨을 연명하는 악몽 같은 이야기를 기괴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그린 것이다. 호레이스 월폴의 장편 ‘오트란토 성’(1764) 등 18, 19세기의 작품 뿐만 아니라 레이먼드 파이스트가 1980년대에 발표한 ‘마법사’(전4권) ‘제국의 딸’(전2권) 등 현대 작가의 소설도 포함됐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환상소설로 소개된 순수문학 작가들의 작품이다. 이 전집은 순수문학 가운데서도 환상성을 담지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작품을 포함하고 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는 도리스 레싱의 소설 ‘생존자의 회고록’도 들어있다. 실재인지 허구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방으로 들어가야만 마음의 평안을 얻는 여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소설은 ‘내면적 공상소설’로도 불린다. 일반적인 SF소설과 달리 현실적인 상황 아래 주인공의 내면 독백과 심리 묘사를 통해 인간의 어두운 미래상을 조명했다는 평가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마거릿 애트우드의 장편 ‘시녀 이야기’도 소개됐다. 전체주의 국가가 국민을 억압하는 21세기 중반 주인공 여성이 사령관의 아이를 수태하도록 강요받는다는 내용의 이 작품은 성과 가부장적 권력의 어두운 관계를 파헤친 미래 예언서로 평가받는다.

‘환상문학전집’의 1차분으로 나온 것은 모두 소설이다. 장은수 황금가지 편집장은 “상상력이 풍부하게 발휘된 여행기와 에세이, ‘구운몽’ 등 한국 고전과 중국 고전, 블레이크의 ‘천국과 지옥’ 같은 시(詩)도 환상문학으로 소개할 것”이라고 말한다. 전집의 기획 의도에서는 한국문학에 대한 도전의식도 엿볼 수 있다. “이성 중심의 계몽주의적 문학이 한국 문학의 주류를 이루어 왔으며, 그것은 문학을 과도하게 현실에 얽매어 버렸다. 아직 한국 문학은 그다지 비루한 현실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상상력을 종횡무진으로 사용하는 자유롭고 활달한 이야기의 세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상상력의 크기를 키운다는 환상문학전집의 의도가 얼마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독자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지 주목된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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