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山門)으로 출가한 이후 참선 공부하는 데 제일의 금기는 “책을 보는 것”이라는 성철 스님의 엄명에 따라 책과 별 인연없이 살아왔다.출가 이후 가까이 한 책이라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 스님들의 어록이 전부였다. 그래서 학창시절로 거슬러가 그때 내게 어떤 책이 심금을 울렸을까 생각해 보았다.
대학에 다니던 1960년대 중반에는 중국의 제자백가 사상들이 제대로 번역되지 않았고 번역됐더라도 난해한 한문 투를 벗어나지 못해 독해가 쉽지 않았다. 그런 중에 나관중의 ‘삼국지 연의’ 번역서는 몇 번이나 읽었던 기억이 난다.
대학 2학년 때인 64년 어느날 우연히 서점에서 ‘플루타크 영웅전’을 발견하고 상, 하 두 권을 밤새 내리 읽었다.
플루타크 영웅전은 삼국지와 또 다른 재미를 주었다. 고대 그리스의 군인과 정치가, 웅변가, 입법가를 골라 기술하고 그들과 유사한 로마의 사람들, 또는 같은 입장에서 활동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란히 써내려갔다.
플루타크 영웅전을 대비열전(對比列傳)이라 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 책은 정치적 사건보다는 개개 인물의 특징을 밝히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삼국지와 같은 소설적 재미는 덜해도 한 인간의 흥망성쇠가 재미있게 그려져 있었다.
사람을 평가하는 데 있어 동양적 사고가 아닌 서구적 사고를 접하게 되는 흥미도 새로웠다.
그리고 나도 주인공들처럼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책에 나오는 세네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남다른 지혜를 갖고 현명하게 처신하고 싶었다. 책을 읽고 또 읽은 것도 그들처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은 나의 전공인 정치외교학과 맞물리면서 자연스럽게 정치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졌다. 훌륭한 정치로 사람들을 잘 살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출가로 인해 그런 꿈과는 거리가 멀어져 버렸다.
플루타크 영웅전을 되돌아보니 우리 정치인에 대한 생각이 또 떠오른다. 정치 지도자들은 그 한 사람의 잘잘못이 그 사람 몫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에 미치는 파장이 자못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실망시키는 현재의 정치 지도자를 보면서 그들이 플루타크 영웅전을 한 번씩 들춰보고 자기의 모습을 비춰보는 거울로 삼는다면 국민에게 훨씬 다가가는 정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원택 스님 조계종 총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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