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는 비즈니스 환경이 최고인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이 곳에서 활동하는 외국 기업만 6,000개가 넘는다.싱가포르 고용의 절반과 국내 총생산(GDP)의 35%가 외국기업에서 나온다. 청소부에서 택시운전사, 호텔 종업원에 이르기까지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는 나라다.
국가 면적이 서울 정도에 불과한데도 골프장은 13개, 외국인 학교는 26개에 이른다. 한 달 전에만 통보하면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는 유연한 고용시스템은 외국 기업들에게 크나 큰 매력이다.
아시아 경제권의 중심인 홍콩에는 세계 30개국에서 265개의 은행이 진출해 있다. 세계 100대 은행 중 62개가 몰려 있는 홍콩의 은행가는 매일 수 백억 달러 규모의 거래가 이뤄지는 아시아의 월 스트리트다.
신흥시장으로 떠 오르고 있는 중국의 상하이(上海)는 어떤가. 신흥 금융가에는 289개의 초고층 빌딩이 즐비하다.
금융기관만 입주해 있는 금융빌딩만 20개가 넘는다. 57개의 외국계 금융기관을 비롯, 118개의 금융기관이 간판을 달고 영업 중이다.
‘허브코리아’를 위해 김포 국제금융도시 마스터플랜을 만든 우리나라가 경쟁해야 할 나라들은 이렇듯 외국기업의 천국이다.
인구 16억 명의 동북아시아는 2010년에 세계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 가까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는 소비의 보고(寶庫)다.
이 지역 맹주(盟主)의 조건은 일류 비즈니스 중심 국가일 수 밖에 없다. 홍콩과 싱가포르가 동아시아의 금융 허브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뒤늦게 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선두 그룹은 물론, 상하이와 오키나와(沖繩)와도 경쟁을 해야 하는 후발 주자의 처지다.
그러나 불행히도 금융 허브를 위한 우리의 인프라는 너무 취약하다. 비즈니스 허브국가의 성패는 다국적 기업본부의 유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홍콩에 944개, 싱가포르에 200여 개 있는 다국적 기업본부가 한국에는 단 1개 밖에 없다.
지난 달 KOTRA가 50개 다국적 기업의 아태지역본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더욱 비관적이다.
홍콩 싱가포르 상하이 호주 한국 말레이시아 등 6개 지역 중 한국의 입지 선호도는 4위에 불과했다.
그나마 1순위로 한국을 꼽은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다. 2,3순위로 꼽은 기업도 응답업체의 7.1%와 18.6%에 그쳤다.
우리나라는 영어구사능력과 노동유연성, 출입국의 용이성, 자녀교육(외국인학교), 관료주의와 사회의 투명성, 자원확보와 생산비용 등 거의 전 부문에서 현격하게 낮은 평가를 받았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한국이 지역본부를 유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아무리 영종도 김포 송도 신도시를 잇는 수도권의 ‘비즈니스 트라이앵글’을 조성해봐야 외국 기업이 들어 오지 않는 ‘유령도시’가 될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오직 하나다. 홍콩 상하이 싱가포르 등 경쟁도시와 차별화한 파격적인 유인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어정쩡한 규제완화와 미지근한 지원책으로는 외국기업을 끌어들일 수 없다.
외국 기업에게 경제특구가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도시라는 인상을 심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경제특구에는 경제활동과 관련된 기존의 국내법과 관행이 완전히 배제돼야 한다.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으로 일종의 경제 치외법권을 조성해야 한다. 무규제 무세금 무분규가 보장되는 ‘경제 해방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경제특구만 많이 만들면 외국 기업들이 자연히 몰려올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경제특구 개발에는 엄청난 재원과 시간이 소요된다.
정부와 국민들이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하지 못하면 국가적 자원 낭비는 물론이고, 동북아 중심국가로 도약할 기회는 영영 사라질 것이다.
이창민논설위원
cm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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