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7월26일 아르헨티나 대통령 후안 페론의 부인 에바 페론이 백혈병으로 숨졌다. 33세였다. 에비타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노동자를 비롯한 하층 계급의 열광적 사랑을 받았던 에바의 장례는 한 달이나 계속됐고, 그 뒤 아르헨티나는 수습하기 어려운 혼란에 빠졌다.무력해진 후안 페론은 섣불리 가톨릭 교회를 탄압했다가 군부에 쫓겨 망명 길에 올랐다. 군부는 국민에게서 에바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그의 시신을 훔쳐 이탈리아로 빼돌렸다가 1971년에야 국내 페론주의자들의 압력에 밀려 마드리드에 망명 중이던 후안 페론에게 넘겼다.
후안 페론은 군부가 잠시 병영으로 돌아간 1973년 대통령 선거에서 죽은 아내의 후광을 업고 다시 대통령이 됐지만 열 달 만에 죽었다. 그 자리를 이은 후안의 새 부인 이자벨 페론은 지지를 확대하기 위해 밀라노의 공동 묘지에 묻혀있던 에바의 관을 대통령 관저로 옮겨왔다.
그러나 지하의 에바는 남편의 새 부인을 좋아하지 않았던지, 이자벨은 21개월 만에 쿠데타로 물러났다. 대통령 관저에 머물던 에바의 시신도 비로소 레콜레타 공동묘지의 가족 묘역에서 안식처를 얻었다. 죽은 지 24년 만이었다.
에바는 거룩한 악녀였고 비천한 성녀(聖女)였다. 로스 톨도스라는 시골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그는 삼류 배우 생활 중에 만난 육군 대령 후안 페론이 1946년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되면서 역사상 가장 강력한 퍼스트 레이디가 되었다.
노동운동과 파시즘을 기묘하게 결합한 페론주의는 남편 후안보다 에바에서 비롯된 측면이 더 크다. 노동자에게 사랑받은 파시스트, 그것이 에바의 존재가 품고 있던 모순이었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어떻든, ‘성(聖) 에비타’는 지금도 많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아있다.
고종석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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