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사상에 따르면 최고의 선정(善政)은 도대체 왕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백성들이 지낼 수 있는 상태라고 하였다.그런데 오늘 우리나라의 국민은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아들까지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 사흘이 멀다 하고 대통령의 아들들이 벌인 부패·비리 행각을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소환당해 구속되고, 또 법정에 서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수많은 공직자와 정치인들이 검찰에 잡혀가 재판을 받는 바람에 우리 국민은 법률용어에 익숙하게 되었다.
그 중의 하나가 이른바 ‘대가성’이라는 법률용어다. ‘시대가 하수상하니’ 국민은 원치 않는 법률 공부까지 해야 할 판이다.
공직자가 뇌물을 아무리 많이 받더라도 ‘대가성’이 없으면 처벌을 면한다. 정치인이 아무리 거액을 수수했더라도 정당 운영에 썼노라고 해명하면 적어도 뇌물죄는 피한다.
그것은 결국 ‘떡값’으로 변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수십 억원짜리 ‘떡값’도 등장했다. 이건 죄없는 진짜 ‘떡값’에 대한 모독이라는 생각이다.
검찰 청사에 들어설 때는 누구도 뇌물을 받았다고 자인하지 않는다. 밤샘 조사를 받고 나오면 거의 어김없이 구치소 행이다.
그때는 대가성이 없었다고 천편일률적으로 변명을 늘여놓는다. 이것이 부패공직자와 부패정치인의 공식이다.
대통령의 아들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김홍업씨의 경우 자신이 받은 47억8,000만원 가운데 현대 삼성 등으로부터 받은 22억 원은 “대가성 없는 활동비”이며 “아태재단이 운영자금 압박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기업들이 도와주겠다고 해서 받은 돈”이라는 이유로 검찰의 기소에서 제외되었다.
김홍걸씨의 경우에도 소위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한 17억원에 대해서는 뇌물죄를 면하고 대신에 조세포탈죄만 적용되었다.
더 웃기는 것은 김진관 전 제주지검장이 자신의 부채를 대신 갚아준 로비스트의 1억 원에 대해서는 대가성을 인정하지 않고 그 이자 8,000만원에 대해서만 대가성을 인정하여 불구속 기소된 것이다.
법은 상식이다. 법의 해석과 적용이 상식을 벗어나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현대나 삼성이 그 거액을 아무런 조건 없이 단지 아태재단 운영이 어렵다고 도와주었다는 것에 납득할 국민은 아무도 없다. 현대와 삼성이 무슨 자선단체인가. 아태재단이 무슨 불우이웃인가.
수익이 나는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기업들이 무슨 돈이 그렇게 남아 돌아 대통령 아들의 거액 ‘활동비’까지 지원한다는 말인가.
김 전 검사장의 경우 원금은 무죄이고 이자는 유죄라는 이야기가 된다. 사과나무 위에 배가 열렸다는 이야기인가. 소가 웃을 일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야 할 사법기관이 이렇게 국민의 법 감정과 유리된 법 해석을 계속한다면 그 위상이 추락될 것은 물론 법에 대한 허무주의가 확산될까 두렵기만 하다. 법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법률가는 달나라에서 온 사람이 아니다. 어떤 기업인이, 어떤 민원인이 대통령의 아들에게 거액의 돈을 교부하였다면 그들의 변명이 어떠하든간에, 구체적으로 어떤 부탁이 오갔던 간에 그것은 뇌물이다.
보통 시민들로서는 평생 만져볼 수도 없는 거액이 아무런 ‘대가성’도 없이 오간다는 것을 믿으란 말인가.
그것이 ‘활동비’이든, 이른바 ‘보험금’이든 결국 어떤 이득을 바라고 한 것이라면 뇌물이 아니고 무엇인가.
근본적인 대책은 법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미국의 정부윤리법은 그 어떤 경우에도 공직자는 10달러 이상을 받지 못한다.
대가성이 있건 없건 그건 관계가 없다. 그 정도 액수의 돈을 받음으로써 법률을 위반한 것이 된다. 투명사회에서는 이상야릇한 법 해석과 법률 체계가 더 이상 통용될 수는 없다.
법이 농락당하고 희롱 당하는 시대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
/박원순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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