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요소’(1984)는 스타일리스트인 덴마크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여기에는 그의 후기작 ‘유로파’(1991) ‘킹덤 ’(1994) ‘브레이킹 더 웨이브’(1996) ‘백치들’(1998)의 씨앗이 모두 숨어있다.
현실을 과감하게 왜곡하는 영상, 잠언 같은 대사들, 진지한 비판정신 등이 돋보이는 문제작으로 그 해 칸영화제 고등기술위원상을 받았다.
까닭 모를 두통으로 괴로워하던 형사 피셔(마이클 엘픽)가 최면술사를 찾아가 자신의 기억을 더듬는 첫 장면부터 관객들은 감독이 거는 최면 속으로 빠져든다.
피셔는 의문의 연쇄살인사건 해결을 위해 이집트에서 유럽의 이름 모를 도시로 소환되던 때를 떠올린다.
그는 먼저 옛 스승 오스본(에스몬드 나이트)을 찾아간다. 피셔는 스승이 쓴 이집트어 판(版) ‘범죄의 요소’를 언급하지만, 오스본은 자신이 쓴 책의 가치를 부인한다.
‘과학이란 이름으로 오류를 범한 거야. 범죄구성에만 집착한 나머지 인간본성을 도외시했네.’ 피셔는 토막살인사건의 단서를 찾기 위해 오스본의 수사원리를 따를 결심을 한다.
그 원리란 ‘범죄자의 모든 정보를 자기 내면에 재구성함으로써 범인과 심리적 일체감을 형성해 범인의 드러나지 않은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감독은 독특한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본다. 카메라는 말의 시체를 느린 동작으로 잡아 죽음을 은유하고, 시종일관 어둠침침하고 비가 내리는 상황으로 ‘늙고 암울한 유럽’을 빗댄다.
어두컴컴한 배경 속에 노란 램프 빛만 떠다니는 몽환적인 배경, 최면에 걸린듯한 내레이션, 표현주의적인 화면구성도 독창적이다. NG 없이 2주만에 촬영했음에도 매끈하다.
범죄 스릴러의 궤도 또한 충실히 따르고 있다. 피셔는 해리라는 용의자가 피해자를 질식시킨 뒤 병조각으로 토막내는 방식으로 살인을 했으며, 현장엔 늘 말머리 모양의 부적이 있음을 알게 된다.
피셔는 범인의 행로를 그대로 따라가며 범인의 다음 행로를 예측한다. 그러나 오스본은 해리가 불에 타 죽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고혹적인 아시아계 창녀 킴(메 메 라이)이 끼어들면서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떨어진다.
극장 문을 나서서야 비로소 사건의 실타래를 풀기 시작하는 관객의 귀에 대고 감독은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체계에 대한 집착을 버려. 중요한 건 살인사건이 아니야.’ 8월 3일 개봉. 18세 관람가.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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