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자금의 단기 부동화(浮動化) 현상이 심각하다. 미국증시 폭락사태와 환율 및 금리불안 등의 여파로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시중의 여유자금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채 초단기 상품에만 이리저리 쏠리고 있다.이 때문에 언제라도 빠져나갈 수 있는 ‘대기성’ 자금이 금융권에 넘쳐 나면서 실물부문에는 장기자금의 공급이 사실상 고갈되는 등 금융시장 구조가 왜곡될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들어 은행권으로의 자금유입이 크게 둔화되는데도 불구하고 7월 들어 현재까지 은행권 정기예금은 1조5,600억원이 늘었으며 이 가운데 90% 이상은 변동금리형 회전식 정기예금을 포함한 6개월 미만의 단기성 예금인 것으로 나타났다.
양도성예금증서(CD), 환매조건부채권(RP), 표지어음 등 단기시장성 예금도 4월에는 3,005억원에 불과했으나 5월 2조7,991억원, 6월 2조2,186억원으로 눈에 띄게 급증하는 추세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미국 발 금융위기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이 달 중순 이후부터 단기상품으로의 시중자금 쏠림 현상이 확연하다”며 “요즘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회전식정기예금이 명목상 장기예금이지만 사실상 1~3개월 단위로 금리를 조정해주는 단기상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년 이상짜리 정기예금의 유입세는 거의 정지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투신권에도 단기상품에만 돈이 몰리고 있다. 7월 들어 투신권에 유입된 돈은 3조1,387억원인데 이중 87%가 초단기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에 집중됐다. 채권형도 장기상품은 1조원 이상 줄어든 데 비해 단기상품은 반대로 1조원 이상 늘어 시중자금의 단기화 성향을 반영했다.
금융권에 이처럼 시장의 추이를 관망하는 단기성 자금이 넘쳐 나면서 부작용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당장 기업들은 자금시장 자체가 단기자금 위주로 흐르는 바람에 사상 초유의 저금리 기조에도 불구하고 장기투자자금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모 중견기업 자금담당자는 “은행들이 단기자금인 기업어음(CP)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단기 차입금의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는 것이 현실”이라며 “자금조달 계획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장기 사업계획을 세우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중자금의 지나친 단기화 현상은 투기성 자금을 늘림으로써 실물부문 투자기피→기업경쟁력 약화→경기침체의 악순환을 낳을 우려도 있다.
한국은행 금융시장국 안희욱과장은 “은행권이 최근 들어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 단기상품들도 자금의 부동화를 부채질 하고 있다”며 “이런 현상이 고착화하는 것을 막기위해선 시장 불안을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이지만 일선 금융기관들도 장기수신을 늘리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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