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8ㆍ8 재보선 후보등록과 함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지만 서울 영등포 을 보궐 선거지역에서는 어디에서도 선거 분위기를 느껴볼 수가 없었다. 정치와 선거에 대한 무관심과 정치 혐오가 더욱 짙게 감지될 뿐이었다.신길동에 있는 민주당 장기표(張琪杓) 후보 사무실 바로 옆 노상에 도장가게를 벌여 놓고 있던 정모씨(78세)는 “후보가 누구인지도 모른다”면서 “선거가 끝나면 코빼기도 보이지 않을 사람들인데 관심 없다”고 손을 내저었다. 함께 대화를 나누던 심모씨(76세)는 “뽑아 놓으면 싸움이나 하고 세금이나 올릴 텐데”라며 맞장구를 쳤다.
한나라당 권영세(權寧世) 후보 사무실 근처에 사는 주부 손모씨(35세)의 경우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손씨는 주저하거나 미안해 하는 기색도 없이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유를 묻자 손씨는 “잘 알면서 뭘 묻느냐”며 오히려 핀잔을 줬다.이런 분위기는 이번 선거가 극단적인 투표율 하락 속에서 철저히 자기 지지세력만을 긁어 모으는 조직선거가 될 것이라는 점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무관심의 근저에는 현정부 실정에 대한 분노에 가까운 같은 감정이 묻어 있어 전반적으로 민주당에 유리한 선거가 되기는 어렵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선거가 6ㆍ13 지방선거에서처럼 인물 위주보다는 ‘당 대 당’선거가 될 것이라는 기류도 뚜렷했다. 신길 4동에서 한양지물포를 하는 주응영(朱應英ㆍ54세)씨는 “마음은 벌써 정했다”며 “정부가 잘못하는 일이 하도 많아서 강력하게 한나라당을 밀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신길 6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김모씨(63세)는 서해교전 사태, 7ㆍ11 개각, 마늘 협상 파동 등을 차례로 거론하며 “무엇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민주당이 김대중 대통령과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라고 역정을 내기까지 했다.
즉 ‘심판은 계속돼야 한다’는 얘기였다. 이에 반해 대림 3동에 사는 이모씨(44세)는 “한나라당이라고 해서 잘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며 “심판은 지방선거로 족하다”고 말했다. 신길 1동에 사는 한모씨(39세)는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역사의 후퇴”라며 “지금은 다소 실망스럽더라도 민주당에 힘을 모아줄 것”이라고 말했다.
인물론으로 보자면 민주당 장 후보가 오랜 반독재 투쟁 끝에 독자 정당을 추진해왔기 때문에 공안 검사출신 변호사인 한나라당 권 후보보다는 인지도에서 앞서고 있다. 그러나 두 후보 모두 별다른 지역 연고가 없는 데다 이런 저런 약점을 갖고 있어 긍정론과 부정론이 혼재해 있는 상황이다. 여의도동에 사는 진모씨(40세)는 장 후보에 대해 “정치를 바꿔보겠다는 신념은 인정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최근 의원이 되기 위해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한 행태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주부 장모씨(43세)는 권 후보에 대해 “젊으니까 때가 덜 묻었을 것”이라면서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사위와 가까워 공천을 받았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렇다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고태성기자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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