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론’ 으로부터 시작된 미국 대표기업들의 회계조작사건이 지난 주 ‘존슨앤존슨’ 에 까지 미치자 더러운 숫자 놀음에 질려버린 미국 투자가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투매에 나섰다.미국 증시가 폭락하자 유럽 증시는 혼비백산했고 국내 증시도 요동쳤다.
삼성전자의 분기이익이 미국 정보통신(IT)기업의 상징인 마이크로소프트를 앞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증시는 왜 미국증시의 영향권에서 독립만세를 부르지 못할까? 태생적인 한계 때문이다.
국내증시는 펀드멘털측면에서, 또 수급측면에서 정도 문제일 뿐 미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국내증시에서 외국인의 주식보유비율이 35%에 달하고 그 중 80%가 미국계 자본이다. 미국계 투자가 입장에서는 미국 주력산업의 부진을 보면서 한국 산업의 안정 성장을 확신할 수 없다.
미국의 성장주도산업은 IT와 서비스 부문이다. 그런데 주력인 IT산업이 부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성장 기여도의 50%를 차지하는 수출부문의 주력이 IT인데 반도체와 LCD산업, 또는 기업의 구조조정에 따라 한국기업이 돈벼락을 맞았지만 미국의 부진으로 향후 전망에 큰 신뢰를 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위기와 관련, 회계조작과 무역수지적자 확대, 환율하락, 주가폭락 등의 단어가 언론에 난무하고 있다. 용어는 다르지만 서로 다른 탈을 쓴 미국 경제의 같은 얼굴이다.
주식은 실물경제의 그림자나 다름없다. 미국의 주가폭락은 회계부정이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펀더멘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회계조작은 기업이 잘 돌아가면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IT의 초고성장에 기가 죽었던 미국의 전통산업이 성장세를 늘리려고 금융피라미드사처럼 자회사를 만들고 거래를 조작하면서 외형놀음에 급급하다 꼬리가 밟힌 것이다.
무역수지적자의 확대는 미국 산업의 대외경쟁력 약화를 의미하고, 이는 곧바로 가격변수인 환율로 나타난 것이다.
한국경제도 환율과 금리, 주가의 약세라는 ‘트리플 약세’로 고전중이다. 발등의 불은 환율이다. 원화가치의 상승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미국의 대외경쟁력 약화는 환율로 나타나는데, 경쟁력은 그렇다 치고 미국의 무역적자가 4,000억 달러를 넘는다면 그 많은 달러를 누가 가져 갔을까. 바로 아시아다.
중국이 2,400억달러, 대만이 1,400억달러, IMF때 외환이 바닥난 한국과 홍콩이 1,100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를 갖고 있다.
아시아에 몰려있는 달러가 미국의 금고로 일정한 수준까지 되돌아가지 전까지 원화가치 상승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아시아 국가들이 경기부양을 통해 수입을 늘이는 게 환율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번 환율하락은 불어난 비게살을 팔아 사상 최고의 이익을 낸 한국경제가 앞으로도 탄탄한 근육으로 바뀐 몸집으로도 이익을 낼 수 있는지 시험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금리의 약세도 지속될 수 밖에 없다. 구조조정으로 부채비율이 100%대를 밑도는 현실에서 경기회복 조짐이 없으면 투자확대를 위한 자금 수요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금리나 환율은 늘 실물의 흐름보다 먼저 움직인다. 주식시장이 실물의 그림자라면 환율이 더 떨어지지 않고 금리가 오르는 시점이 주가가 올라갈 때다. 큰 그림을 보면 미국의 IT경기 회복이 관건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최근 취임 후 처음으로 내년에 530억달러의 예산을 들여 초고속망투자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IT경기는 기술진보 때문에 2.5~3년을 주기로 움직인다. 2000년 8월께 꼭지를 찍었던 미국 IT경기는 이르면 내년 봄쯤이면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증시에서도 ‘절망 끝, 희망 시작’의 싹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전병서 대우증권 리서치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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