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섬진강에서 만난 시인 김용택(54)씨는 “요즘엔 자꾸 연애시가 씌어진다”고 했다.무슨 까닭이 있는지 묻자 “강물에 잠긴 산자락이 예쁘지 않으냐”고 답했다.
그러고 보니 참 예뻤다. 시인의 키는 키우지 못했지만 시 정신을 키운 섬진강의 자연, 그곳에서 그는 날마다 보는 산과 물이 예쁘다고 말한다.
봄날에 씌어진 연애시 한 편.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봇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봄날’)
그렇게 씌어진 시를 묶어 여름에 ‘연애시집’(마음산책 발행)을 펴냈다.
김씨의 일곱번째 시집이다. 그는 좀처럼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지 않는다. 갑자기 시가 풀리면 사나흘 10여 편씩 쏟아내고 차곡차곡 모아둔다. 그
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 다 내 말이 되어줄 때, 가문 땅에 콩 나듯 드물지만, 그럴 때 내 삶은 최고”라고 말한다.
막 나온 시집을 들고 광화문 한복판에서 택시를 잡아타는 시인의 키는 훌쩍 커 보였다. 연애를 하면 사람이 달라 보인다더니.
‘간절하면/ 가 닿으리/ 너는 내 생각의 끝에 아슬아슬 서 있으니/ 열렬한 것들은/ 다 꽃이 되리/ 이 세상을 다 삼키고/ 이 세상/ 끝에/ 새로 핀/ 꽃/ 한 송이’(‘꽃 한 송이’)
설렘과 떨림과 애틋함. 연애란 앞에 앉은 연인에게 ‘너를 갖는다는 것이/ 이렇게 눈부신 것이냐’라고 속삭이면서 한숨을 쉬는 것이다.
‘네가// 겁나게// 보고 싶다’고 몇 번씩 뇌어 보면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어느덧 져버린 사랑을 두고 ‘푸른 댓잎에 베인/ 당신의 사랑을 가져가는/ 흐르는 섬진강 물에/ 서럽게 울어는 보았는지요’라고 외치면서 가슴을 움켜쥐는 것이다.
연애를 하면 하고 싶은 말이 마음에 쌓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입 밖에 나온 말은 마음 속 말과 달라진다.
하고 싶은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하게 전달하기 위해 사람들은 언어가 아닌 문자로 소통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연애편지를 쓰고, 시인은 연애시를 쓴다. 연애를 하면서, 연애시를 쓰면서 김용택 시인은 한 가지 깨달음을 전한다.
모든 사랑은 아름답다는 것. ‘지면서도 아름다운 것은 해뿐이로구나/ 져도 아름다운 것은/ 사랑뿐이로구나’(‘서해에서’ 부분)
김씨는 사는 게 너무 재미있다고 한다. 교실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에게 “가만히 좀 있어봐! 조용히 해!”라고 소리치면서도, 그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웃음을 터뜨릴 듯하다.
길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새 울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저 새는 작년에 왔던 새가 아닌데”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하루하루 세상을 살아가는 게 즐겁고 기쁜 시인에게는 일상도 날마다 신비롭다. 그러니까 늦바람 같은 연애시집이 그에게는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시의 집이다.
이 시집이 나온지 사나흘만에 1만 부가 넘게 팔렸다는 소식이 들린다. 눈에 띄는 시집 제목이 웬만큼 힘이 됐을 법하다.
‘연애’라는 단어는 ‘사랑’이라는 말보다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사람들은 대개 “사랑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머뭇거린다.
“연애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유쾌해진다. 연애라는 말은 그렇게 편안하다. 시인에게 연애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산그늘처럼 걸어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해가 질 때, 나무와 산과 강에게로 걸어가는 일은 아름답다 해가 질 때/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산그늘처럼/ 걸어가는/ 일만큼/ 아름다운/ 일은/ 세상에 없다.’(‘연애1’)
김지영기자
kimj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