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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필을 쓰다 / 관심? 사생활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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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필을 쓰다 / 관심? 사생활 침해?

입력
2002.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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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다시 얻으면서 생활이 많이 달라졌다.우선 사람을 많이 만난다는 게 큰 변화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짧은 통과 의례를 거치게 된다.

나이, 결혼 여부, 자녀의 수 등에 대한 질문이 바로 그 통과의례의 내용이다.

예전의 통과 의례와 비교해보면 출신 대학과 고향이 빠져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혹시 그것이 농경 사회의 전통이 바래고 있다는 증거는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결혼 유무는 왜 물어보는 걸까. 궁금하다. 아마도 일부일처제에 대한 강박증이 널리 퍼져서가 아닐까.

내가 실직한 4개월 사이에 세상은 더욱 더 타인의 결혼에 대해 더 많은 호기심을 갖게 된 것 같다. 그나마 결혼을 해서 다행이고 안심이다.

‘결혼을 안 하셨어요? 왜요?’ 등등으로 이어지는 후속 질문을 받지 않아도 된다. 통과의례 기간이 짧아지니 마음도 가볍다.

문득 아내가 고마워진다. 아내는 세상의 걱정어린 시선에서 나를 건져낸다.

상대방의 나이에 대한 궁금증은 뚜렷한 관계설정을 위해서일 것이다. 위 아래가 어떻게 되는지 밝힌다는 것은 중요하다.

상하의 위계가 명확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까닭 없이 불안해 하니까. 그런데 상대방이 기혼자인지 아닌지는 왜 궁금한 걸까.

세상으로 복귀하니 모두가 내게 취재를 하고 있었다. ‘언제 결혼했나요?’ ‘자녀는 두지 않을 생각이십니까?’ 등등.

곰곰이 따져보면, 질문 자체에 함정이 있는 것 같다. 결혼 여부에 대한 질문엔 일부일처제라는 ‘정답’에 대한 확신이 전제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모두가 결혼제도를 굳게 믿고 있는데 너 혹시 ‘남’은 아니겠지?’ 하는 믿음이 바닥에 깔려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상대방이 미혼 여성이라면 거기엔 ‘아직도 결혼제도에 합승하지 못했니? 어서 막차라도 타야지’라는 채근의 뜻도 담겨져 있을 터이다.

너무도 널리 퍼져있고 당연하기조차 한 이런 질문 속에는 상대방의 성생활에 대한 엿보기 취미도 숨어 있는 듯하다.

일부일처제라는 ‘바르고 착한 성생활’ 노선에 혹시 반기라도 드는 사람은 없을까? 사람들은 타인의 성생활에 대해 노심초사해 하는 것 같다.

사생활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관심거리다. 상대방의 사생활에 대한 참견은 좋게 보면 굉장한 호의의자 관심이며 나쁘게 보면 타인의 사생활에 대한 거침 없는 끼어들기이다.

이런 호기심이 자연스레 발동되는 탓은 ‘나’와 ‘타인’ 사이의 거리가 쉽게 무시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질문 방식이 잘못 되었으니 일거에 폐기해야 한다’는 따위의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동성애자거나 미혼 여성이거나 이혼남이거나 이혼녀라면 어떻게 대답해야 옳을까를 상상한다.

‘채만식의 소설 ‘치숙(痴叔)’에 나오는 주인공과 비슷한 처지입니다’라거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안나와 같은 형편이랍니다’ 같은 대답은 어떨까.

대답 뒤에 다가올 썰렁함과 당혹스러움을 아직 견뎌낼 자신은 없지만.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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