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총장의 영향력이 큰 시기가 있었다. 시대의 문제에 대한 대학총장의 발언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그럴 때의 대학총장은 특정 대학의 대표라기보다 지성의 권화(權化)로 인식됐으며,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가령 제3공화국시대에 고려대 김상협 총장의 발언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지성과 아울러 야성, 현대와 아울러 원시, 치밀한 계산과 아울러 우직한 의리’를 제시했던 발언은 지금도 유효하다.
1971년 10월15일 위수령이 내려지고 군인들이 캠퍼스에 쳐들어와 학생들을 폭행하며 끌어갔다.
한 달 이상 교문을 닫았다가 개강한 직후 그는 “하늘을 보고 울어봅시다. 차마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 땅을 치고 통곡해 봅시다.
차마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라는 연설로 학생들의 심금을 울렸다. 대학은 황폐해졌지만, 그의 발언은 새로운 힘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는 10월15일 아침, 심경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유구무언(有口無言)이라고 대답했다.
한 신문은 ‘유구무언이면 유이난청(有耳難聽)’이라고 화답하며 아픔을 함께 했다. 대학과 언론은 지성과 양식으로 통한다.
신문이 매년 2월 총장들의 졸업식치사를 싣는 것도 의미있는 지성의 발언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장들은 점점 왜소해지고 있다.
특히 장관, 국무총리로 기용되는 일이 잦아지면서 대학총장의 권위는 더욱 낮아졌다. 정통성 없고 인기없는 정권일수록 총장 출신을 선호한다.
김상협씨도 5공시절에 국무총리가 되어 스스로 덧없이 만절(晩節)을 훼손했다.
■오늘날 대학총장에게는 학식과 덕망이 문제가 아니라 대학발전기금을 모으는 게 더 중요하다.
지성인의 역할만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연세대 교수평의회가 가을부터 총장평가제를 실시키로 할 만큼 총장은 수시평가대상이 돼버렸다.
20일 임명장을 받은 정운찬 서울대총장이 어제 기자회견에서 “대학총장은 지배하는 자리가 아니라 봉사하는 자리”라며 학자와 법관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했다.
다 썩어도 이 세 부류만 온전하면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론적인 말이지만 그동안 소홀했던 화두를 다시 던진 그에게서 새로운 총장의 모습을 찾고 싶다.
임철순 논설위원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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