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할리우드 자본으로 만들고 배급되는 한국영화도 있고, 연출 의뢰를 받는 감독도 있다. 바야흐로 ‘한국의 오우삼이나 리안’의 꿈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반가운 소식이다.그러나 자국에서 스타감독이 된 뒤 할리우드에 스카우트됐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지는 않는 다.
입성과정만큼이나 어려운 생존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성공사례의 대표로 꼽힐 수 있는 홍콩 출신 오우삼(미국명 존우) 감독은 1994년 ‘하드 타겟’으로 할리우드에 데뷔했지만 80 년대부터 가족을 미국으로 이주시키는 등 오랜 준비기간을 거쳤다.
미국에 온 뒤에도 5년 동안은 매일 TV 만 보며 영어를 익혀야 했고, 시민권도 97년에서야 얻었다.
제작현장에서 문화적 충격도 크다. 감독이 제작의 전권을 쥐고 왕 대접을 받는 자국과는 달리 할리우드에서 감독은 비교적 중요한 역할을 가진 스태프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우삼 감독은 “홍콩에서는 제작 전 스토리에 대해서만 간단히 알려주면 끝인데 여기서는 사전 제작회 의만 몇 달을 한다. 모든 스태프가 각각의 의견을 내놓는다. 평생 영화를 만든다 해도 적응못할 것 같다”며 혀를 내두른다.
제작기간과 예산이 2배로 늘어났다거나, 사계절의 풍광을 두루 담는다거나 며칠 동안 밤샘 촬영을 하는 일 역시 불가능에 가깝다.
시간별로 계산하는 제작비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급 하나 계산해 주는데도 수 십장의 서류를 거쳐야 하는 ‘체계적’인 제작시스템은 바꿔 말하면 감독에게 는 조금의 융통성도 주지 않는 족쇄이다.
때문에 이들의 할리우드 데뷔작이 자신의 색깔을 잃 어버린 어정쩡한 결과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오우삼만 해도 ‘하드 타겟’의 미지근한 반응 뒤, 2년 동안 미국전역을 여행하며 미국 문화에 대한 고민을 해야 했다.
‘나의 장미빛 인생’의 알랭 베를리너는 스타 데미 무어의 도중하차라는 수모를 겪은 뒤 작품을 완성하지 못했고, ‘패왕별희’의 첸 카이거 감독 역시 “킬링 미 소프틀리” 를 어렵사리 완성했으나 개봉도 못하고 있다.
‘델리 카트슨’의 장 피에르 주네, ‘크라잉 게임’ 의 닐 조던, ‘연인들’의 루이 말 감독도 한 두 작품 할리우드의 취향에 맞는 주문형 영화에서 탈색된 연 출력을 보인 뒤 아예 고국으로 돌아가 자신의 색깔을 되찾았다.
이렇게 보면 오우삼 과 리안의 성공케이스는 극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리안의 경우만 해도 미국에서 대학을 나와 10여년 동안 이곳에서 훈련받고 감수성을 익혀온 완벽한 ‘미국 감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베이징 오페라식 액션과 미국 액션물 사이에서 결국 행복한 접점을 찾은 오우삼 외에 비슷한 경로를 겪은 볼프강 피터슨 , 라세 할스트롬, 밀로 스 포먼같은 성공 사례들도 많다.
오랜 성장통 끝에 이들이 할리우드 영화에 뿌려놓은 다양한 자국의 감수성이야말로 할리우드가 끝없이 눈을 돌려 외국 감독을 찾는 이유이며, 한국 감독들에 게는 고통을 충분히 감수할 만한 매력적인 일이지 않은가.
/재미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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