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경제의 심장 역할을 하는 미국 증시가 위기를 맞고 있다. 다우존스 지수가 1만선을 깨고 8,000선을 위협하고 있다.회계조작과 부당거래가 연이어 드러나면서 기업시스템에 대한 신뢰 기반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운영은 기업에 대한 투자가들의 신뢰가 절대적 요건이다. 특히 기업경영 실태와 전망을 알리는 회계는 시장경제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기본 요소이다.
지난해 말 엔론사의 회계비리가 밝혀졌을 때만 해도 단발성의 사건으로 끝날 것이라는 견해가 있었다.
그러나 이후 유사 사건이 연이어 터지자 이 문제가 근본적이고 구조적이었다는 충격을 주고 있다. 월드콤, 제록스, GE, IBM, 머크 등 미국 경제를 이끄는 세계적 기업들이 이익과 매출을 부풀리거나 조작하고 부당 거래이익을 취한 것으로 확인되자 증권시장이 폭락 상태에 접어들었다.
이렇게 되자 달러화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국제 통화시장이 동요하고 있다. 증시가 계속 추락할 경우 기업들은 자금조달이 어려워 투자활동이 위축된다.
또 투자자들은 재산상 손실이 크고 소비 능력을 잃는다. 여기에 달러화의 하락세가 심화될 경우 자본이 빠져 나가 미국 금융시장이 빈사상태가 된다. 이런 현상이 계속 악화된다면 최악의 경우 미국 경제는 공황의 위기까지 겪을 수 있다.
미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타격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우선 미국 자본의 영향력이 큰 증권시장이 휘청거리고 있다.
또 달러가치 하락에 따른 원화의 절상은 수출의 목을 조이고 있다. 이렇게 되자 겨우 회복세를 되찾은 우리 경제는 언제 다시 주저 앉을지 모르는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
그러나 미국 경제의 불안이 우리 경제에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미국 기업시스템의 혼란은 우리 경제 구조의 내실을 다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미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국제자본의 흐름이 새로운 투자처를 따라 이동하고 있다.
구조개혁과 규제혁파 등을 통해 투자 여건을 개선할 경우 환율이 유리한 우리 경제는 국제기업들의 투자를 효과적으로 유치할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은 외환위기 이후 외국자본에 의해 이익 못지않게 희생이 컸다. 투명성이 낮고 경영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외국자본은 우리 기업들에게 무자비한 퇴출과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그러자 산업활동이 마비되다시피 하고 실업자가 대량 발생하며 증권시장이 폭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후 외국자본은 우리 기업들과 금융기관들을 헐값에 인수하면서 우리 경제의 지배력을 강화했다.
이번 미국 경제불안을 계기로 우리 경제는 불합리한 외국자본의 지배를 벗어나고 효율적인 개방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외국자본에 피해의식을 가져서는 안 된다. 세계 어느 나라와도 당당히 경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외국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하여 우리 경제 발전의 수단으로 이용해야 한다.
문제는 현재의 기업구조와 금융시장 체제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아직도 기업비리가 만연하고 구조조정이 부실하여 공적자금을 계속 빨아들이고 있다.
또 증권시장은 투기성이 높고 가격 조작이 흔하며 외국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따라서 더욱 투명한 지배구조와 회계제도를 정착시키고 증권시장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여기에 악화되고 있는 수출시장을 타개할 수 있는 기술 경쟁력 강화에 매진해야 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미국 경제의 불행이 우리 경제의 행운일 수는 없다. 당장 금융불안이 확산되고 경기가 위축될 경우 우리 경제는 위기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미국이 경제회복을 위한 끈질긴 노력과 함께 비리근절과 제도개선에 강도 높게 나서고 있는 만큼 우리는 그보다 몇 배의 노력을 쏟아야 한다.
그리하여 다시 닥치는 경제 불안을 일소하는 것은 물론 미국 경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진 경제체제로 나가야 한다.
/이필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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