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의 위기는 이제 시작이다', '지금이 증시로 돌아갈 때다' 세계 금융의 중심인 미국 증시의 폭락을 놓고 낙관과 비관이 엇갈리고 있다.이업 회계부정이 미국 자본주의 모델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는 만큼 미국 증시가 깊은 수렁으로 바져들 것이라는 절망감이 우세하다.
그러나 미국 경제 특유의 펀더멘털과 기업의 자정노력을 바탕으로 미국 증시가 바닥을 다지고 반등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도 만만찮다.
■ 비관론
미국 증시는 최근 10일 가까운 폭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중ㆍ단기로 봐서 기업 회계 부정 사태를 만회할 호재가 없다는 점이 비관론의 핵심이다.
현 증시 폭락이 1987년의 ‘블랙 먼데이’나, 나아가 1929년 대공황을 닮았다는 우려도 있고 현 주가가 여전히 거품이라는 분석도 있다.
잇따른 기업 부정으로 추락한 미국인들의 투자 심리는 도미노처럼 이어지는 회계 부정 사태가 멈춘다 해도 곧바로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데 월가 분석가들이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21일 월드컴의 파산보호 신청 결정에서 나타났듯 회계 부정에 연루한 기업들이 최악의 국면을 맞을 가능성 때문에 투자 심리는 극도로 위축한 상황을 지속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게다가 올 초부터 미국 경제 성장에 대한 기대가 잔뜩 부풀어 있어 기업의 웬만한 실적 호전 발표로는 주가를 끌어 올리기가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올해 미 경제 성장률을 최근 최대 3.75%로 상향조정한 것도 기업 수익이 뒷받치지 못할 경우 증시에 부담만 줄 가능성이 크다.
“경제 성장은 기대보다 완만할 것이며 주가는 투자자들의 기대에 눌린 기업의 실적 전망 하향 조정에 취약한 상태”라는 지적이다.
투자분석회사인 톰슨 파이낸셜/퍼스트 콜에 따르면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 지수에 편입한 177개 종목 가운데 93개 기업이 3ㆍ4분기에 월가의 예상치를 충족시키지 못할 것으로 나타났다.
증시와 상승 작용하는 달러 약세로 투자 자금이 해외로 연쇄 이탈하는 점도 주가 하락을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1987년의 ‘블랙 먼데이’와 비슷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현 증시는 투매성 매도가 나타나야만 폭락을 멈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은 22일 분석가들을 인용해 “증시는 합리적인 수준보다 과다 매매되는 경향이 있다”며 “지금의 미 증시는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추가 하락할 것이며 반등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주가 반등을 위해서는 ‘증시 공황’이 불가결하다는 지적이다.
주가 동향을 파악하는 중요한 기준인 주가수익률(PER)을 놓고 볼 때 미국 증시는 앞으로 60% 정도 추가 하락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 호에서 전후 S&P 500 주식의 PER은 15였으나 현재는 40이어서 정상으로 돌아가려면 주가가 60% 하락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배당률 기준으로도 현재의 주가는 높다는 분석이다. 미국 주식의 배당률은 현재 평균 1.7% 정도로 자사주 매입에 따른 배당률 상승을 가산할 경우 2.3%까지 올라가며 성장률 추세를 3%로 볼 때 미국 주식에 대한 장기 수익 기대치는 이 두 수치를 더한 5.3%이다.
하지만 지수연동 미 재무부 채권 수익률이 3%이기 때문에 주식 보유에 따른 리스크 프리미엄은 2.3%(기대치는 4% 수준)로 낮아 주가는 더 하락할 것이라고 이 주간지는 덧붙였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 낙관론
‘동이 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
주가폭락으로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져있던 미국 증시에 이 같은 희망섞인 증시 격언이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먼저 떨어질대로 떨어진 만큼 지금이 주식을 살 때라는 기대감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투자전문지 배런스는 최신호(22일자)에서 현재 뉴욕 증시가 1990년대 중반 버블 직전 시점까지 떨어졌다며 이는 10년 만에 찾아온 투자 최적기라고 보도했다.
배런스는 현재 뉴욕 증시의 주가 수준이 역사적인 기준에 적용할 경우 ‘합리적인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특히 40년 만의 초저금리를 감안할 때 현재 주가는 매수에 적절한 상태라고 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개발한 가치 모델에 따르면 뉴욕 증시 S&P 500 지수는 30% 저평가돼 있으며 모건스탠리의 투자분석모델도 35% 저평가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이 잡지는 소개했다. 배런스는 9ㆍ11 테러 직후 주가 폭락 당시에도 주가 반등을 가장 먼저 예견했었다.
신뢰상실과 주식매도의 악순환을 촉발했던 기업 회계부정 태풍도 소멸 단계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월스트리트의 호황론자인 골드만삭스의 애비 조셉 코언 이코노미스트는 21일 CBS TV에 출연, “기업들의 폭로 상황이 거의 막바지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코언은 “많은 미국 기업들이 지난 2~3분기 동안 회계부문에서 극적인 변화를 낸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하반기에는 회계 투명성이 많이 나아질 것”으로 낙관했다.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도 최근의 기업 부정회계 스캔들은 코카콜라의 스톡옵션 비용처리 등 기업관행을 긍정적인 변화시키고 있으며 이는 결국 장기적으로 탄탄한 기업실적을 보장해주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비즈니스위크는 구체적으로 최고경영자(CEO)들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요구를 받아들여 다음달 14일 “재무정보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서약을 하면 미국 증시가 상승궤도를 탈 것으로 전망했다.
펀더멘털에 대한 옹호론도 등장하고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21일 닷컴버블의 해소와 회계 스캔들, 주가폭락의 대형 악재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가 기적적으로 잘 견뎌내고 있는 것은 튼튼한 펀더멘털에 기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올 경제성장률 예상치는 3.5%로 75~95년의 평균 성장률 2.6%를 웃돌고 있다.
이 신문은 저금리와 견고한 가계수입을 바탕으로 소비부문이 여전히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데다 기술혁신이 경제활동의 효율성을 꾸준히 높여주고 있어 미국 경제는 생산성에서 높은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낙관했다.
증시 속설도 한몫 거들고 있다. 미 투자사인 파네스톡의 투자전략가인 알란 액커만은 “타임이나 뉴스위크 같은 대중 잡지에 증시침체를 뜻하는 곰이 등장하는 횟수가 늘어나는 것은 투자자들에게는 주식시장으로 돌아가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전했다.
김병주기자
b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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