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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마초'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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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마초'의 천국

입력
2002.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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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유고될 경우 총리가 대통령의 직무를 대행하게 될 텐데 국방을 모르는 여성 총리가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느냐.”최근 어느 의원의 이 같은 망언에 대해 사회 각계에서 호된 비판이 쏟아졌다.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다. 한국 사회는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여성 차별을 하는 건 용인할 수 없다는 수준엔 이르렀지만, 은밀하고 교묘하게 여성을 차별하는 건 당연하거니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마초(남성우월주의자)의 천국’이기 때문이다.

이 주장에 대해 “한국보다 여성 차별을 심하게 하는 나라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소리를 하느냐”는 반론이 나올 법 하다.

그런 반론엔 “‘월드컵 4강’이 좋다는 걸 알았으면 한국이 ‘남녀평등 4강’이 되면 큰 일 나는가?”라고 답해주면 될 것 같다.

여성 차별엔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없다. 상층과 하층의 차이도 없다. 아니 물적 조건이 열악한 탓에 하층의 여성 차별이 더 심한 면도 있다.

상층엔 물적 여유가 있어 남성 대 여성의 경쟁 구도가 형성되지 않거나 경쟁이 약한 반면, 비교적 상호 대등하게 만나는 하층에선 경쟁이 매우 치열하기 때문이다.

최근 구해근 하와이대 사회학과 교수가 펴낸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이라는 책은 1970년대에 여성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데에 앞장섰던 남성 노동자들의 심리 상태를 실감나게 잘 묘사하고 있다.

그 남성 노동자들은 회사에 매수되었지만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구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성 노조 활동가들에게 동정적이었던 한 남성의 고백처럼, 남성들이 여성이 주도하는 노조지도부를 지지하지 않은 것은 ‘남자들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여성 노조지도부를 지지하는 몇 명의 남성들은 동료 남성 노동자들에 의해서 배척당했고 노조활동에서 물러나거나 결국은 여성 노동자들의 믿음을 배반해야 했다. 분명히 뿌리깊은 성차별 이데올로기가 주된 장애물이었다.”

그런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위에서 아래로’와 ‘아래에서 위로’의 방식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여성 총리 임명은 ‘위에서 아래로’의 의미를 갖는다. 좀더 내실을 기하려면 고위 공직자, 정치인, 언론사 간부, 대학 총·학장, 기업 경영진에 더욱 많은 여성이 진출할 수 있게끔 치열하고도 지속적인 압력을 가해야 할 것이다.

‘아래에서 위로’의 변화를 위해선 우선 성차별을 계급 문제와 분리시켜 해결의 우선 순위가 있다고 보는 발상부터 극복해야 할 것이다.

성차별은 성차별의 문제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계급차별, 성차별, 지역차별, 장애인차별 등 모든 종류의 차별에 내재해 있는 기본 구조는 동일하기 때문에 상호 무관한 문제들이 아니다.

성차별을 전제로 한 개혁과 진보는 더 이상 개혁과 진보일 수 없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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