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끝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도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가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월드컵은 그만큼 감동적이었다. 우리 팀은 당당히 4강에 올랐고, 경제도 축구처럼 세계 4강으로 도약하자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과연 지금 우리 경제는 어떤가. 그 같은 전망은 보이는 것일까.
“한국의 열정적인 축구 선수들과 화려한 응원은 1997년 금융위기 극복 후 한국 사회와 경제 내에 새롭게 형성된 활기와 신뢰를 반영하는 듯 보인다. 한국 팀이 세계적인 팀으로 전환한 것은 올해 최소한 6% 성장이 예상되는 등 한국 경제의 부활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렇게 보도했다.
또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아시아 경제위기 5년 후’라는 특집기사에서 한국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분명한 모범을 제시했다며, 경제위기를 맞은 국가들은 한국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발(發) 각종 악재로 세계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우리 경제는 그런대로 잘 버티고 있다.
거시 경제지표들은 양호하고 앞으로 크게 나빠질 것 같지도 않다. 일부에서는 과열을 우려할 정도다. 6월 중 소비자 기대지수는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98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직도 어두운 부문이 많다. 자신감이 지나쳐 또 다시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까지 하다.
뉴욕타임스는 해외 경제학자들을 인용, 경기장 건설비용 등을 감안하면 한국과 일본에 있어 월드컵 개최의 추가적인 경제 혜택은 제로에 가깝거나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월스트리트저널 계열의 투자 전문잡지 배런스는 월드컵이 한국의 브랜드 구축에 값을 따지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자칫 장기적인 이득이 없는 값비싼 파티가 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뿐만 아니다. 미국 컨설팅사인 매킨지는 ‘금융환경의 변화와 대응 방안’이라는 보고서에서 금융부문에 얼마인지를 모르는 대규모 부실 채권이 존재하고 가계부채의 부실 가능성 등 때문에 한국 경제는 여전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경제란 복합적이어서 보는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가 있다. 하지만 외국인들의 분석에도 일리가 있다.
우리 경제는 아직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취약한 것은 사실이다. 지방선거와 월드컵 등의 영향으로 지난달까지 실업률은 4개월째 하락했지만 고용의 질적인 면에서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10대 실업률은 높아지고, 장기 실업자와 일용 근로자는 늘고 있으며, 제조업 취업자는 줄어들고 있다.
저소득층의 고용 불안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의 통계는 더 충격적이다.
ADB는 ‘동아시아의 빈곤’이라는 보고서에서 한국의 경우 경기 회복에도 불구, 1인당 하루 소득이 2.15달러 이하인 극빈 계층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 극빈 계층은 97년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99년에는 전체 국민의 0.2%인 9만 명, 2002년에는 10만 명으로 늘었다는 것이다.
소득의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 계수는 97년 0.28대에서 2002년에는 0.3을 넘어섰다. 축제의 뒷편에는 이런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최근 금융기관들이 수익성이 좋아지자 구조조정을 소홀히 하면서 계열사 확장 등 과거 회귀적인 경영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의 말이다.
어찌 금융 부분에만 국한될까. 모든 부분에서 이완된 분위기가 두드러지고 있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월드컵을 훌륭히 치루고도 추락한 나라들이 많다. 이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국내외 상황은 점차 어려워져 가고 있다. 이제는 월드컵 때의 그 뜨거웠던 마음을 경제하려는 정신으로 전환해야 할 때다.
이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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