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한국 방송문화에 ‘명랑 과학’ ‘인포테인먼트’(정보를 뜻하는 인포메이션과 오락을 뜻하는 엔터테인먼트의 합성어) 열풍을 일으켰던 SBS ‘호기심 천국’(연출 최원상 백승일, 화 오후7시5분)이 이상해졌다.시청자들의 순수한 호기심을 과학적으로 접근했던 이 프로그램이 요즘은 온통 국내외 미스터리 소개에 급급하고 있다.
16일 방송분을 보자. 일요일에서 화요일로 방송시간을 바꾸고 진행자도 황수관 박소현에서 손범수 손태영으로 바뀐 이날 제목은 ‘일본 미스터리 특집’.
머리카락이 자라는 인형, 교통사고 사망자 이름이 모두 ‘준이치’ 였던 일본 준이치 도로,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 숫자가 틀린 계단 등 방송내용 전부가 ‘미스터리 천국’이었다.
개편 전인 7일에도 이같은 조짐이 보였다.
과학적 실험에 근거한 호기심 해결은 온데 간데 없고 피 흘리는 불상의 미스터리로 시간을 허비했다.
난무하는 ‘학교괴담’의 진실을 파헤친다는 구실로 혹시 학교가 예전 공동묘지에 세워진 것은 아닌지 지적도까지 확인했다.
23일에는 김혜수 한채영 전지현 등 여성 탤런트의 사례를 통해 글래머의 새로운 기준을 찾는 선정적인 내용을 방영할 예정이다.
‘호기심 천국’은 이런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1998년 3월8일 첫 방송한 이래 올해 초까지만 해도 일상에 감춰진 과학의 비밀을 멋있게 벗겨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소리로 촛불을 끌 수 있을까’ ‘풍선껌으로 진짜 풍선을 만들 수 있을까’ ‘아이들은 왜 자신의 나이를 말할 때 손을 내밀까’ 등등.
사람이 탈 수 있는 종이배를 만들기 위해 제작진이 기울였던 그 수많은 시행착오에 시청자들은 또 얼마나 찬사를 보냈던가.
‘한국방송대상 최우수작품상’ ‘학부모가 선정한 올해의 좋은 프로그램’ ‘한국방송프로듀서 실험정신상’ 등 이 프로그램에 받은 엄청난 영광들.
4월에는 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문화재단으로부터 오디오 영상부문 대한민국 과학문화상까지 차지했다.
그것은 피 흘리는 불상의 비밀을 파헤친 대한 칭찬이 아니다. 그래놓고도 제작진이 여전히 이러한 상찬을 계속 기대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임이 분명하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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