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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년이후]교수 은퇴후 세무사개업 변동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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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년이후]교수 은퇴후 세무사개업 변동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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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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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 변동수(邊棟洙ㆍ66)씨는 지난해 명지전문대 교수로 정년퇴임한 후 세무사 사무실을 개업했다.세무사로 일하는 한편 그는 꾸준히 원서번역에 매달려 출판을 계획하고 있기도 하다.

강단에 서는 목표을 품은 지 20여년 만에 꿈을 이루어 낸 변씨는 이런 묵묵한 저력으로 “나의 삶은 늘 무엇이든 꾸준히 계속하는 것이었으며 제2의 인생 역시 그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명지전문대 세무회계과 교수로 정년을 맞았다. 정년 퇴임한 직후 나는 제자와 함께 ‘세무사 변동수 사무소’를 차렸다. 비록 사무실은 보잘 것 없지만 어쨌든 학교를 떠난 이후 나의 새 보금자리가 된 것이다.

세무사 자격증은 첫 직장이었던 한독약품에 다니던 때 내가 자격증을 딸 조건을 갖추었다는 것을 알고 마련해둔 것이었지만 노후의 일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자격증에 연연한 적 없이, 공부만 하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지난 삶은 늘 그러했다. 목표를 향해 질러오지는 않았으되, 언제나 무언가를 준비했고 늘 공부를 했다.

고려대 상대에 입학하면서부터 학자의 길을 꿈꿨지만 그 꿈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20여년이 걸렸다. 학부를 마치고 공군장교로 복무하며 고려대 대학원 경영학과를 다녀 석사학위를 마쳤던 때가 엊그제 같다. 당시 학위논문을 줄지어 서서 제출하던 의식이 있었다.

내 석사학위 논문 제목을 보고 홍인식 전 고려대 총장이 “좋은 걸(공부) 하십니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요즘 박사학위 졸업생보다 훨씬 적은 숫자의 석사 졸업생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중에는 홍 전 총장 같은 인물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석사를 마치고 한독약품에 입사하게 됐다. 용기가 있어 외국 유학을 가서 박사학위라도 했으면 모를까.

고려대 경영대학원 강사 월급으로는 결혼도 못할 것 같고, 은행정도는 손쉽게 취직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러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도 석사에 장교 출신 아닌가. 그러던 중 나는 간부사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한독약품에 들어갔고 다시 미국 석유개발회사인 텍사코의 한국지점 경리부장으로 옮겼다.

고대하던 석유는 나오지 않았고 텍사코가 한국지점을 정리하면서 1981년 비로소 명지대 교수로 강단에 서게 됐다. 오랜 꿈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젊은 강사시절과는 달리 강한 사명감, 교직자로서의 소명의식을 실감했다. 나는 새롭게 공부를 시작해야 했다. 강사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16년이 지나 있었고 다시 강단에 서니 어렵기 그지 없었다.

세무사 사무실을 차린 지금도 나는 여전히 공부하는 심정이다. 두꺼운 세법 책의 내용을 일일이 다 알아서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저 남에게 누를 끼치거나 피해가 오지 않도록 노력하는 심정이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려 할 뿐이다.

일이 힘들게 여겨질 때면 교수가 된 후 박사학위를 땄을 때를 떠올린다. 학교에 자리를 잡았지만 박사학위가 필요하다고 해서 쉰 살이 넘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정말 죽기를 각오하고 책을 잡았다. 어머니의 격려를 받으며 술도 먹지 않고 노력한 끝에 8년 만에 드디어 학위를 땄다. 그 때를 생각하면 이제라도 못할 일이 무엇이 있으랴 하는 생각이다.

세무사 일을 하는 한편으로 나는 영어 원서를 꾸준히 번역하고 있다. 지금 판권문제를 알아보고 있는데 교섭만 잘 되면 곧 출판할 생각이다. 건강한 대한민국 지성인이라면 영어 일본어 중국어 정도는 익혀야 한다.

유창하지 않더라도 인사라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실버들에게 지금이라도 공부를 하라고 권한다. 공부를 하는 게 건강을 지키고 무료함을 때우는 데에도 좋다. 나는 미국 석유회사인 텍사코에 다니던 시절부터 울 정도로 열심히 영어를 공부했었다.

그 때 외국 유학을 갔던 친구들이 사무실에 와서 내가 일하는 것을 보고 “미국에도 안 가본 네가 영어도 잘도 한다”고 혀를 내두르곤 했었다. 일도 정말 많이 하고 월급도 많이 받아 앉아서 외화를 획득한다고 자부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이렇게 무엇이든 계속 할 수 있는 것은 건강이 뒷받침되는 덕분이다.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정년 이후의 삶을 새롭게 설계하려면 무엇보다 건강이 첫째다. 그러려면 절제있는 생활과 규칙적인 생활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건강만 좋다면 정년을 맞기 전부터 번역이든 뭐든 무언가 할 일을 정해놓고 꾸준히 해야 한다.

사실 중년까지 대관령을 한번 못 넘어봤을 정도로 일에만 매달려 살았다. 일중독이라고 할 정도로 회사 일이 전부였고, 휴일엔 교회 일을 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이제는 인생을 새롭게 볼 줄 알게 됐다. 세무사로 일을 계속하는 것은 일면 뉴욕대에 유학 중인 아들 부부의 마지막 등록금을 보태주겠다는 욕심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뿐만은 아니다.

아들 딸에게 기대지 않고 노년을 맞겠다는 생각으로 정년 전부터 계획한 일을 계속 하고 있는 것이다. 자녀란 과객(過客)일 뿐이다.

다만 우리 부부는 아들 내외가 뉴욕에 머무는 동안 뉴욕 여행을 떠나려 한다. 젊은 시절 휴가 한번 제대로 챙기지 못했지만 이제 나의 삶은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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