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의 불안으로 인한 엔고 악재가 이제 막 회복의 기대가 부풀기 시작한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19일 미국 주가가 대폭락하자 일본에는 주초 엔화 환율이 1달러당 115엔을 돌파하고 닛케이(日經) 평균주가는 1만엔 선이 깨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이미 17일과 19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가 1달러당 115엔대를 넘나들면서 비명을 올리던 일본 경제 당국과 기업들은 미국 주가하락으로 달러 약세가 더욱 가속화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 경제재정 담당 장관은 20일 “미국 자산시장의 조정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어 일본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미국 주가하락과 달러 약세가 계속될 가능성을 지적했다.
▼달러당 115엔대가 마지노선
엔화 환율 115엔대는 일본 기업의 수출채산성이 확보되는 마지노선이자 일본 통화 당국의 ‘환율 방위 라인’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장의 분석이었다.
올해 예상환율을 125~135엔으로 잡았던 일본 기업들은 엔고로 인한 손실을 다시 계산하는 등 비상이 걸렸다. 가장 잘 나가는 도요타자동차의 경우도 환율 115엔대가 지속될 경우 영업이익이 1,000억~2,000억 엔 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5월 경기저점 진입 선언 직후 1만 2,000엔대 직전까지 회복됐던 닛케이(日經) 평균주가도 최근 엔고에 대한 우려로 1만 엔대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하야미 마사루(速水優) 일본은행 총재는 19일 중의원 답변에서 “엔고가 이어지면 개선 기미를 보이고 있는 일본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이에 앞서 시오카와 마사주로(塩川正十郞) 재무성 장관도 도쿄 시장에서 처음으로 한때 115엔대에 진입했던 17일 “중대한 국면에 왔다”며 “엄중히 관찰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장기불황 탈출의 적신호
일본 정부는 5월 경기 저점 진입, 6월 저점 통과를 선언하고 본격적인 경기회복을 기대해 왔다. 그러나 아직 내수와 개인소비가 미약한 상태로 경기회복의 견인차인 수출이 엔고로 인해 타격을 입으면 모처럼의 경기회복세가 주저앉아 버릴 수도 있다.
일본은행은 이로 인해 17일 발표한 7월금융경제 월례보고서에서 5개월 연속 경기판단을 상향 조정하면서도 엔고를 경계했다. 보고서는 “최근 엔화 대비 달러화 약세와 미국 증시 부진으로 일본 수출업체들의 불안이 이어지고 있어 장기불황 탈출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경제연구센터는 최근 미국의 주가하락과 엔화 강세가 일본의 경제성장률을 0.6% 끌어내릴 것이라는 추산을 내놓기도 했다.
▼대책이 없다
이같은 엔고를 막을 방책이 없다는 데서 일본 정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이번 엔고가 기본적으로 IT(정보기술)를 중심으로 한 신경제의 거품붕괴와 잇단 회계부정 사건 등 미국 요인으로 인한 ‘미국발 달러 약세’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그래도 환율 방어를 위해 125엔대이던 5월 22일을 시작으로 6월 28일까지 무려 7차례나 시장개입을 했지만 효과가 전혀 없었다. ‘나홀로 시장개입’이 먹혀 들지 않자 일본 정부는 7월 들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하사미 마사루 일본은행 총재는 “세계적으로 달러화가 팔려나가고 있다”면서 “한동안은 어쩔 수가 없다”고 속수무책임을 시인했다.
일본의 일부 전문가들은 달러-엔 환율이 110엔대를 넘어 연내에 100엔대마저 붕괴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일본 정부가 기대하고 있는 것은 미국, 유럽연합(EU) 등과의 협조개입에 의한 환율 조정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국 정부는 미 제조업계의 이익을 고려해 달러 약세를 방관하고 있다는 게 일본측 분석이다.
일본 외환시장 관계자는 “미국 금융시장에서 대규모 자본탈출이 일어나지 않는 한 미국은 달러 약세를 용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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