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비리가 다시 세간의 화제다.최근 급성장한 대형 연예기획사와 방송사의 ‘부적절한 관계’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미 몇 차례 검찰 수사의 초점이 되기도 했다. 마약 사건이나 비디오 파동이 그러하듯 연예계 비리 관련 수사는 떠들썩한 데 비해 남는 것도 없고 달라지는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 홍보비 파문은 이전과 달리 한국 대중음악의 발전과 방송의 정상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검찰이 전에 없이 강한 의지를 가지고 가요계와 방송계의 부패 고리를 끊겠다고 공언하고 대형 연예기획사, 케이블TV 음악채널, 지상파 방송 가요프로그램 관련자, 기타 미디어 권력 등으로 수사를 확대, 심화하고 있다.
드러난 것은 일부 연예기획사에서 홍보비라는 명목으로 일부 방송사 관계자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사실이지만, 초점은 스타를 매개로 한 가요계와 방송계의 비리 규명에 있기 때문이다.
연예기획사나 방송사 모두 스타가 필요하다. 기획사는 음반을 팔아야 하고 방송사는 시청률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스타 가수를 만들고 싶어하는 기획사와 스타가 필요한 방송사의 이해관계는 잘 맞아 떨어진다.
여기서 지상파 방송사가 우월한 지위를 갖는 이유는 그 독점성에 있다. 텔레비전을 홍보의 주무대로 삼을 수밖에 없는 댄스 가수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상파 텔레비전에 얼굴을 내밀려고 한다.
가수뿐만 아니라 스타가 되고 싶어하는 다른 연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주요 시민운동 단체도 제보, 시위, 기자회견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연예계 부패 척결에 앞장을 서고 있다.
대중음악 관계자뿐만 아니라 일반시민이나 언론운동단체에서도 이 문제를 중시하는 이유는 지상파 방송 연예오락프로그램의 ‘하향 평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지상파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보면 대중가요, 연예정보, 토크쇼, 주말 버라이어티쇼, 주부대상 프로그램 등 연예오락 프로그램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등장 인물도 대부분이 인기 가수를 비롯한 일부 스타들이다.
방송사는 연예오락 프로그램을 통해 적은 비용으로 안정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오락 장르나 프로그램 형식을 개발하는 것보다는 인기 가수 등 스타를 데려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유사 장르 남발, 베끼기, 한탕주의, 스타 의존, 잡담과 엽기가 판을 치게 되었다. 물론 케이블TV, 위성방송의 등장으로 다채널 경쟁이 가속되고 있는 환경도 이를 부추기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홍보비 수사는 연예기획사에 대한 ‘세무조사’차원이 아니라 지상파 방송사의 ‘체질 개선’을 강제하는 방향으로 귀결할 필요가 있다.
방송 권력보다 연예 자본이 우월적 지위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그 구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일부 방송인의 주장은 지나친 엄살이다.
일부 기획사들이 방송사와 맞설 정도로 성장했다고 해도 현재 권력구조상 지상파 방송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대형 기획사들이 방송사 로비에 목을 맬 이유가 없다. 게다가 연예기획사에 방송사와 같은 공적 책무를 강제할 근거도 없다.
지상파 방송의 우월적 지위는 그 서비스의 질에서 나오는 것이다.
공영방송, 상업방송 할 것 없이 유사한 연예오락 프로그램 경쟁을 벌이면서 스스로 존재의 근거를 약화시키고 있는 것은 역설적이다.
지상파 방송사와 방송인들은 이번 사태를 늘 있는 가상경보의 ‘민방위 훈련’이 아니라,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독점구조에 안주해온 체질 개선의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우선,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폐지해야 한다. 다음으로 연예오락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캐스팅의 원칙을 정하고 사안 별로 이를 공개해야 한다.
/최영묵 성공회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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