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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16)가시연꽃 씨앗은 개구리알 닮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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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16)가시연꽃 씨앗은 개구리알 닮았죠

입력
2002.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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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되고 나니 수생식물원으로 향하는 발길이 부쩍 잦아졌습니다. 수련, 노랑어리연꽃, 남개연, 흑삼릉….지금 제가 일하고 있는 수목원의 수생식물원에는 아름다운 수생식물들이 한창입니다. 여름이 무르익고 있으니 물에 사는 식물들은 제철을 만난 것입니다.

특별히 제가 관심을 두고 들여다보는 것은 가시연꽃입니다. 가시연꽃은 자생하는 우리의 물풀이며 세계적인 희귀식물이기도 합니다.

가시연꽃은 한 번만 보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절로 압니다. 1m가 넘는 큼직한 잎이며 줄기며 꽃받침 등 보라색의 꽃잎을 제외하고는 식물체 전체에 무서운 가시가 가득하지요.

이 신기하고 아름다운 식물은 지금 점차 사라져가는 중에 있습니다.

보전할 필요성이 아주 커졌죠. 안전한 곳에 대피시켜 빨리 증식해 많은 개체수를 만들어 놓아야 할 필요가 있어 몇 년 전부터 관심을 두고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아주 신기했던 일은 그렇게 큰 잎을 만드는 식물이 한해살이풀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지금 사는 곳이 위태롭다고 옮겨 심어 봐야 만일 씨앗을 맺지 못한다면 헛일이 되고 맙니다.

우선 씨앗을 모으러 우포늪으로 갔습니다. 물 속을 들여다보니 우무질처럼 반투명의 말랑한 것에 쌓여 둥둥 떠다니는 것이 있었습니다.

가을에 웬 알일까 싶어 어디서 온 것인지 보니 다름 아닌 가시연꽃의 씨앗이었습니다.

깊은 물 한 가운데서 꽃을 피운 가시연꽃의 잣알처럼 굵고 단단한 씨앗이 그대로 물속에 떨어지면 다음해에 싹이 올라오기도, 멀리 퍼져나가기도 어렵습니다.

꾀를 낸 가시연꽃은 물 속에 사는 개구리의 모습을 흉내내어 씨앗의 겉에 우물질 같은 물에 잘 뜨고 말랑말랑한 껍질을 씌운 것입니다.

열매가 익어 떨어지면 그 속에서는 씨앗들이 쏟아져 나오고 물에 한동안 둥둥 떠다니다가 적절한 곳에 닿으면 그 물컹한 껍질은 썩고 씨앗은 적절한 땅속에 묻혀 내년을 기약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애초부터 연하고 가벼운 씨앗을 만들지 않았냐구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혹시 물이 아닌, 싹이 트기 나쁜 환경에 씨앗이 떨어지게 되면 씨앗 껍질은 아주 단단해져 외부의 환경과 완벽하게 차단하도록 하는 거죠.

그 상태로 수백년을 활력을 유지한 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던 가시연꽃은 저희 국립수목원 수생식물원에 완전히 자리를 잡고 3년째 꽃을 피웁니다.

가시연꽃은 제가 살아오면서 살리려고 가장 공들인 식물이며,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식물의 씨앗이 양서류의 알과 비슷한 모습을(물론 겉모양만 그렇지만) 할 수 있다는 자연의 참으로 놀라운 적응력을 깨닫게 해준 주인공이죠.

그 가시연꽃이 올해도 새로 잎을 내놓았는지가 궁금해 발길을 옮기고 있습니다.

/이유미ㆍ국립수목원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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