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베이징(北京)을 통해 들어 오는 북한경제의 변화 소식이 심상치 않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대명사인 식량 배급제를 폐지하고, 임금과 상품가격을 시장가격으로 현실화하고, ‘외화 바꾼 돈표’(태환지폐)를 폐기하고 단일환율제를 실시한다는 것 등이다. 북한 당국이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어 아직 설에 불과하지만 신빙성은 높아 보인다.배급제 폐지등 잇단 수정
북한이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개혁을 시작한 것인가, 아니면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부분적 개선 작업인가. 우선 북한 경제가 처한 상황부터 살펴 보자. 곡물 생산량 급감 및 외부 시장환경 변화로 북한 당국은 식량을 배급할 수 있는 물량 확보가 어려워 졌다. 배급량이 급격히 줄고, 일부 지방에서는 자체적으로 식량 문제를 해결해야 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농민들은 협동농장의 작업보다는 텃밭의 생산에 더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농민시장 등에서 보다 많은 수익, 즉 시장가격으로 환산된 수입을 올리는 데 치중하게 됐다.
공업생산 부문도 임금과 인센티브가 시장가격이 아니라 국가에서 정한 국정가격 기준으로 지급되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농민시장의 비싼 시장가격으로 생필품을 조달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가내 수공업에 치중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결국 공적 부문의 생산성 하락과 노동력의 심각한 이반 현상이 초래된 것이다. 대외 경제 부문도 사정은 다를 바 없다. 암암리에 형성된 시장에서는 실질 환율이 달러당 200 북한원 정도이지만 공식 환율은 달러당 2.1 북한원 정도였으므로 무역을 통해 유입된 달러 및 물자는 상당 부분 사적경제로 흘러 나가는 현상이 지속됐다.
공급 부족 및 경직된 가격 구조로 공적 유통기구가 유명무실해 진 반면, 장마당 등 사적 유통 영역은 확대되고 있다. 이런 일련의 현상은 결국 공적 경제 부문의 약화를 가속한 반면 사적 경제 부문의 급속한 확대를 가져옴으로써 국가차원의 경제 운영이 마비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지속돼 왔다.
북한 당국은 공적 경제 부문의 역량을 강화하여 국가차원의 경제운영 능력을 제고할 필요에 직면했고, 이를 위해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변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선 인건비와 인센티브를 현실화함으로써 공적 부문에서 활동을 해도 얼마든지 사적 시장에서 물품을 구입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것이다.
식량 배급제를 폐지, 식량을 국영상점 등에서 직접 구입할 수 있도록 하고 목표 생산량의 일정 부분만 국가에 세금 형식으로 제공하고 나머지는 전량 국가가 시장가격 기준으로 수매함으로써 농민들이 협동농장 등에서의 생산 활동에 전념하는 것이 오히려 더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대부분의 생필품 가격도 시장 가격과 연동해 운영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월급을 인상함과 동시에국정 가격을 시장 가격과 동일하게 운영함으로써 공적 경제 부문의 활성화를 도모한 측면이 있다. 한편 ‘외화 바꾼 돈표’를 없애고 환율을 시장가격으로 현실화함으로써 외화의 집중과 함께 가격의 왜곡 현상을 최소화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이미 나진ㆍ선봉 지역에서 시험적으로 실시한 바있다.
시장경제 전환 속단 일러
최근의 변화는 배급제 폐지와 가격 현실화 조치를 통해 공적 경제 부문을 정상화,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보다 공고히 하고 사회주의 경제 강국을 건설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유지하기 어려워 시장경제 방식을 도입하기 시작했다고 도 볼 수 있다.
물론 단기적으로 많은 부작용이 따를 수 있으며 앞으로 추가 보완 조치를 취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은 북한이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하기 시작했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며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도 어렵다.
다만 북한이 내외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사회주의 계획경제 운영방식을 수정하고 있으며 이런 시도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내부 변화의 성공 여부는 외부 세계와의 연결 고리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구축해 나갈 것인가에 달려있다.
董龍昇(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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