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세계 대공황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일까. 미국 뉴욕증시가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진 채 연일 폭락세를 보이면서 다우 8,000선이 붕괴될 위험에 놓여 있다. 이 여파로 유럽과 일본 등 전 세계 주요 증시도 동반 폭락했다. 국제 자본들의 탈(脫) 미국 현상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달러 가치도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문제는 지금부터다
19일 뉴욕증시는 그야말로 ‘검은 금요일’의 상황을 보여주었다. 이날 다우지수는 4.6%(390포인트) 폭락한 8,019.26로 거래를 끝냈다. 장중에는 8,000선마저 붕괴됐다. 이같은 낙폭은 지난해 9ㆍ11 테러 이후 처음 증시가 열렸던 9월 17일(7.1%) 이래 최대이자 사상 7번째로 큰 폭이다. 다우는 지난 2주 동안 1,360포인트(15%)나 뒷걸음질친 끝에 98년 10월 14일(7,978.78) 이후 최저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문제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점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20일 미국 증시의 하락세가 분식 회계 및 기업실적 우려에 따른 투자자들의 신뢰 부족으로 당분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증시는 신뢰상실이 주식매도를 부르고 이에 따른 주가하락이 다시 절망감을 키우는 악순환의 소용돌이에 진입한 것처럼 보인다. 많은 국내외 투자자들은 번영과 투명성을 상징하던 미국 주식과 달러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다.
투자전문지 배런스는 미국 주식은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득을 본다는 매수후 보유(Buy and Hold)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지난 한 달 동안 뮤추얼펀드에서 모두 570억 달러가 빠져 나갔다. 이는 지금까지 한 달 간 최대 이탈 기록인 지난해 9ㆍ11테러 사태 직후의 270억 달러의 두 배에 육박하는 규모다.
가뜩이나 미국 경제는 악재 투성이다. 미국 5월 무역수지 적자는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고 3ㆍ4분기 기업실적 전망도 결코 밝지 못하다. 또 주가 폭락으로 미국인의 자산효과가 떨어지면서 미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었던 민간소비를 크게 위축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펀더멘탈이 아니라 멘탈이 문제
앨런 그린스펀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에 이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잇달아 미국 경제의 펀더멘탈(기초 여건)은 튼튼하다며 낙관론을 피력했지만 전혀 효과가 없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미국 증시는 펀더멘탈이 아니라 멘탈(심리)이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19일 ‘투자의 상실’에 더해 ‘신념의 상실’이 증시를 지배하고 있다고 전했다. 소비자운동의 창시자인 랠프 네이드는 18일 워싱턴 포스트 칼럼을 통해 미국 자본주의는 이윤은 사유화하고 위험과 비용은 사회에 전가하는 기업사회주의로 변질됐다고 비판했다.
▼美 대공황과 日 장기불황 상황과 비슷
세계 외신들은 지금의 미국 상황이 1929년 대공황과 90년 일본 장기침체 진입 시기와 비슷하다는 견해를 조심스럽게 제시하고 있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미국 주식차트를 10년 전의 일본과 비교해 보면 양국의 주가 추이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게 움직인다면서 미국 증시가 세기말의 대활황장의 종언을 고하고 대조정 국면에 들어선 것 같다고 보도했다.
경제분석가 월터 샤피로는 17일 USA 투데이에 기고한 칼럼에서 “맨해튼의 정신과 상담실에 주식투자 손실로 충격을 받은 환자들이 몰려들고 투자은행 직원들은 자녀 학비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며 미 증시가 신뢰붕괴로 공황전야 같은 분위기에 빠져들었다고 전했다.
김병주기자
b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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