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 걸러 허물어진 판자집, 정화조에서 뿜어나오는 악취, 희망을 잃은 주민들의 술 주정.18일 재개발을 위한 본격적인 철거작업을 앞둔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관악구 신림 7동 난곡(신림 1재개발구역)의 밤은 잿빛의 그늘 속에서 음산하기 짝이 없었다.
■세입자 250세대 ‘벼랑끝’
“이제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월수 50만원으로 고교생 아들, 딸을 혼자 키우는 이주희(42ㆍ청소부)씨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99년 외환위기의 여파로 빌딩 청소일마저 끊겨 집을 팔고 난곡으로 들어와야 했던 이씨.
보증금 100만원, 월세 8만원의 사글세 판자집이지만 이마저도 사치란 말 인가. 8평 남짓한 이씨 가족의 마지막 피난처도 포크레인 삽 아래 무너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최근 대한주택공사가 신림1구역(17만1,770㎢) 토목공사에 착수, 철거 작업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마지막 남은 세입자 250여 세대는 점점 더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도시빈민층 2,500여세대가 모여 살던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 난곡에 대한 재개발 시행인가가 난 것은 지난해 10월.
3,322가구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2006년에 들어서게 돼 ‘달동네 난곡’은 역사의 한 장으로 남게 됐지만 극빈층의 세입자들에겐 감당하기 힘든 시련으로 다가오고 있다.
■공부방, 봉사활동도 끊겨
‘난곡 세입자 다모임’의 최병화 대표는 “그래도 수완이 있는 사람들은 제 살 길을 찾아 떠났지만 남은 이들은 정말 오갈데 없는 딱한 사람들”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쥐꼬리만한 이주보상비(4인가족 기준 650만원)로는 어디 갈 엄두도 못내고, 전세금 1,000여만원에 관리비 15만원의 임대아파트도 ‘빛좋은 개살구”라고 말했다.
동네 친구들이 다 떠나 또래가 하나도 없다는 초등학교 5학년 혜민(11)이는 “목욕탕이랑 화장실 있는 집으로 이사 갔으면 좋겠다”며 모기 만한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말 그대로 지금 난곡은 ‘죽기 살기로 버텨야만 하는 곳’으로 변했다. 사업 시행인가 난 이후 시작된 빈집 철거로 이미 1,000여채 이상이 허물어져 동네 곳곳엔 시멘트 조각과 벽돌 부스러기, 끊긴 전선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대학생들의 공부방 운영이나 마을 방역 봉사활동 등 외부의 손길도 끊긴 지 오래다.
주민 김모(38)씨는 “여기 아파트에 입주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아픔을 모르겠죠”라며 힘겨운 걸음으로 언덕배기를 올라 집으로 향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신기해기자
shink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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