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모 대기업 사장의 회고.“환란직후 구조조정 때문에 어려움도 많았지만 결국은 환율이 살려줬다. 환율이 하루아침에 배로 뛴 덕에 사실 수출업체들은 돈도 벌었다. 결국 그 돈으로 부채비율도 낮추고 구조조정도 한 것이다.”
이제 ‘고환율 잔치’는 끝났다. 미국의 경제불안이 조기수습돼 ‘강한 달러(약한 원화)’로 곧 복귀할 수도 있지만, 더 이상 환율변동에 울고 웃지 않으려면 기업 스스로 ‘환(換) 면역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국내 기업들은 환란이후 고환율 체제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환란전 달러당 800원대에서도 얼마든지 수출을 했지만, 이젠 1,200원대 초반에도 못살겠다고 아우성들이다.
무역협회가 올 5월 250개 수출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업계가 평가하는 적정환율은 평균 1,305원, 손익분기환율은 평균 1,258원으로 나타났다.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전기ㆍ전자(1,241원) 철강(1,254원) 화학(1,248원)조차 손익분기점을 1,200원대 이상으로 설정했다.
그러나 1,200~1,300원 환율에서만 유지되는 국제 경쟁력이라면, 그것은 경쟁력이 아니다.
도요타 소니 마쓰시다 등 일본 기업들이 엔고(高)의 체질개선을 통해 ‘1달러=70엔’에도 살아 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창조한 것처럼, 국내 기업 역시 1달러=1,000원대에서도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체질을 다져야 하는 것이다.
우선 필요한 것은 ‘외환 포트폴리오’의 재구성이다. 환위험을 회피(헤징ㆍHedging)하고 특히 요즘 같은 달러약세 때는 기타 통화 결제비중을 늘릴 수 있도록 달러-엔-유로 등 기축통화간 결제비중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현재 삼성전자의 경우 달러:유로:엔의 결제비율을 70:20:10으로 유지함으로써 환위험을 분산하고 있고 LG전자도 외화채무의 30%이상을 헤지거래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극소수 대기업외엔 ‘헤지’ 개념조차 생소한 실정이며, 달러화에 절대 의존함으로써 환율변동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실정이다.
환위험 관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원가절감(생산성 향상)이다.
환율이 10% 절상되더라도, 조직ㆍ인력의 탄력적 운용과 생산설비의 고도화를 통해 원가를 낮춰 생산성을 20% 끌어올린다면 이익은 오히려 더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격 아닌 기술과 브랜드로 승부하는 고부가가치 첨단제품 개발도 마찬가지다.
생산설비의 해외이전도 원가절감 차원에서 전향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엔고를 이겨낸 도요타의 경우 현재 해외생산비중이 국내생산을 앞지르고 있다.
우리나라 현대차의 경우 해외생산규모는 국내의 10분의1에도 못미친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조차 국내외 생산비율은 현재 4대1에 불과한 상태다.
삼성경제연구소 김득갑 수석연구원은 “1990년대 중반 원화가치가 절상됐을 때 국내 기업들이 이를 체질개선을 하지 못한 것이 결국 외환위기로 연결됐다”며 “이번 원고(高)야말로 가격에만 의존하던 기업체질을 바꿔 제2의 도약을 이룰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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