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이 처한 주변환경은 언제나 위험하고 적대적이어서 한국인들에겐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정서가 싹터 왔다.19세기 말 조선왕조가 서구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은둔왕국(hermit kingdom)’ 이 되었던 것도 이런 외부세계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한국은 이제 개방을 통한 외부세계와 접촉이 서로에게 이롭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한국이 꿈꾸고 있는 ‘아시아 허브국가’의 성공여부도 과거 ‘은둔왕국’의 유산을 얼마나 떨쳐버리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비즈니스ㆍ물류ㆍ금융 허브국가의 실현 가능성을 논의할 때 한국은 종종 네덜란드와 비교한다. 그러나 네덜란드가 유럽의 관문 국가인 것과는 달리 한국은 현재로선 아시아의 관문 역할을 수행하기가 어렵다.
만약 북한과의 갈등이 계속돼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남북한철도가 연결되지 못한다면 한국은 아시아 대륙과 이어지는 배후연계망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외교역 경험이 짧은 것도, 수세기 동안 세계 각국과 활발한 무역활동을 해온 네덜란드와 구분되는 점이다.
잠재적 허브국가로서 한국은 또 선발국가인 홍콩 싱가포르와 경쟁해야만 한다. 현 시점에서 외국업체들이 서울보다 홍콩 싱가포르를 선호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은 홍콩 싱가포르보다 훨씬 큰 내수시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제도와 기업 환경, 기준이 뒤떨어지지 않는다면 외국기업들에게 한층 더 매력적일 것이다.
또 한국은 강력한 제조업을 보유하고 있어 물류부문을 강화한다면 허브국가로서 경쟁력을 배가할 수도 있다.
한국이 ‘허브의 꿈’을 실현하려면 몇 가지 정책적 과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첫째는 인프라 투자다. 모든 투자를 한꺼번에 시행할 수는 없는 만큼 균형과 집중의 원칙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세계적 물류기업들을 한국으로 유치해야 한다.
기업활동의 제반 과정을 아웃소싱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이고 유통 창고 수송 통관 등 물류작업도 아웃소싱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한국이 허브국가가 되려면 먼저 다국적 기업들이 한국에서 물류 분야를 아웃소싱할 수 있도록 세계적 물류업체를 유치해야만 한다.
셋째, 기업친화적인 세관ㆍ통관체제가 갖춰져야 한다. 외국투자가들은 공무원들의 태도가 개방적이고 친 기업적인 나라에 우호적일 수 밖에 없다.
넷째, 국내로 들어오고 나가는 제품에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허브는 단지 화물을 옮겨 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즉, 반입된 컨테이너가 제3국으로 그냥 가게 하지 말고 컨테이너 박스를 뜯은 뒤 한국에서 물품을 재가공 재공정 재포장토록 하자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제조업체에도 많은 일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다섯째는 임금인상 억제다.
한국이 중국과 임금경쟁을 할 수는 없더라도 중국과 임금격차가 더 이상 빠르게 벌어져선 안 된다.
여섯째, 외국기업의 정착을 위해 국제적 법률회사의 국내영업을 허용해야 한다.
일곱째, 규제는 투명하고 공정하되 국내외 기업에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고 외국어 교육, 특히 영어 뿐 아니라 중국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또 다국적기업 직원들이 서울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의료 자녀교육 및 각종 시설을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단편적 접근보다는 국가 전체의 총체적 개혁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개인적으론 경제특구 설치를 지지하지 않는다. 특구를 만들면 이점도 있지만 역으로 특구 아닌 대부분 지역은 매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허브국가가 되기 위해선 한국 자체가 외국인 투자의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 일본보다 접근이 쉬워야 하고 중국보다 예측가능성이 높아야 하며 홍콩ㆍ싱가포르보다 더 넓은 내수시장을 활용하도록 해야만 한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한국은 분명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로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예룬 라머스 네덜란드투자진흥청 주한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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