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본격적으로 시장경제 실험에 돌입한 정황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여러 채널의 대북 소식통들은 이 달초부터 북한이 계획경제의 근간인 배급제를 포기하고, 노동시간과 생산량에 따라 월급을 차등 지급하는 인센티브제를 도입했다고 확인했다.
북한은 이를 위해 암시장과 공식시장 간의 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임금과 물가를 10배 이상 인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연구소 이종석(李鍾奭) 남북관계연구실장은 “북한 지도부가 지향하는 개혁의 방향이 중국식 ‘시장사회주의’인지는 불명확하지만, 오랜 준비 끝에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추진한 구조 변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개혁은 식량 등 자원 고갈에서 파생된 경제왜곡 현상이 체제의 부담으로 작용하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북한은 생산력 감소로 지난해 사(私)경제 의존 규모가 통독 전 동독 수준인 국내총생산(GDPㆍ167억9,000만 달러)의 3.6%(6억 1,000만 달러)에 육박했다.
북한 당국은 배급제의 핵심인 식량 조차 전체 필요량(450만 톤)의 60% 수준 밖에 공급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급 부족은 곧 물가 왜곡으로 나타났다. 통일부는 1998년도 북한 물가동향 분석에서 농민시장의 물가수준이 국정가격에 비해 최대 500~1,000배 차이가 난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경제 왜곡은 북한 권력의 지지 계층인 군인이나 공무원, 노동자들의 생계까지 위협, 체제 불안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북한의 물가ㆍ급여 인상이나 배급제 폐지는 국영 부문과 사경제 부문간의 가격 격차를 줄이고 군인 등이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단 주된 목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또 주민들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수천 배씩 차이가 났던 암시장과 공식시장 간의 환율을 100달러 대 1만9,000원으로 일괄적으로 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북한의 개혁은 생산력 확대를 위한 획기적 조치가 없는 상태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오히려 사경제 부문의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악순환으로 되풀이될 수도 있다.
사경제를 인정해도 물자 공급이 지속적으로 안되면 물가만 올라 더욱 시장이 왜곡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북한 당국이 공급 확보 차원에서 국가가 소유한 공장ㆍ기업소의 생산품을 직접 시장에 내다파는 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는 분석까지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영훈(金永勳) 박사는 “북한의 시장경제 실험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모르겠으나, 인적ㆍ물적 인프라 없이 갑자기 시스템을 전환하면 상당한 후유증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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