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41)가 한국을 방문했다. 1994년에 이어 두번째다.그는 방한 중 TV의 책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독자 사인회를 가지며, 부산에서 창작강의를 한 뒤 24일 이한한다.
한국에서만 100만부가 넘게 팔린 처녀작 ‘개미’를 펴낸 지 10년 째, 국내에서 그의 이름은 누구 못지않게 친숙하다.
최근 소개된 장편소설 ‘뇌’(전2권ㆍ열린책들 발행)는 출간 열흘 만에 5만6,000부가 팔렸다.
놀라운 기세다. 18일 만난 베르베르는 “내가 사랑하는 나라, 한국의 독자들을 만나게 돼 기쁘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월드컵대회 내내 한국을 응원했다는 그는 “월드컵에서 프랑스가 부진했던 것은 선수 개개인이 기업화해 스포츠 정신이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신작 ‘뇌’에 대해 평단에서는 ‘베르베르의 소설 중 최상품’이라고 평가했다.
프랑스 문단에서는 지금껏 당신의 작품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이례적인 반응이다.
“프랑스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문단 시스템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어 견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문단의 평가와 상관없이 독자들이 읽고 싶어하는 것을 쓴다.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읽는 동안 일상의 고통을 잊고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소설은 평론가가 아닌 독자들의 힘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웃으면서)아, 나는 아웃사이더로 존재하는 게 좋다.”
-‘새로운 것’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새로운 것은 나 자신, 내가 수행하는 작업이다. 나는 소설을 통해 과학과 문학의 만남을 시도한다. 내 소설은 모든 장르를 통합한 것이다. 공상과학소설, 추리소설, 철학과 시(詩)까지. 실제로 필립 K.딕, 아이작 아시모프, 에드가 알란 포, 쥘 베른, 구스타브 플로베르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궁극적으로 철학소설(philosophy fiction)을 쓴다는 게 나의 지향점이다. 소설 ‘뇌’의 첫 문장도 ‘우리는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으로 시작하지 않는가.”
-그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으로 당신은 소설에서 ‘의식의 확대’를 최상으로 꼽았다. 추진력 있는 삶의 동기라고 하기엔 순진하고 추상적인 것으로도 읽힌다.”
“글을 쓰면서 ‘의식의 확대’를 경험한다. 창작에 몰두해 나 자신까지 잊게 되는 순간 찾아오는 놀라운 충만감이다. 자아를 넘어서는 듯한 느낌, 짧은 순간이지만 죽음도 두렵지 않은 느낌이다.(베르베르는 기자에게 ‘의식의 확대’라는 인생의 동기에 동의하느냐고, ‘의식의 확대’로 인한 희열의 순간을 체험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책을 읽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사랑도 ‘의식의 확대’의 일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부는 아니라 해도, 인간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무엇이다. 결혼은 그렇지 않지만.(그는 ‘이혼했다’고 짧게 말했다.) 결국 ‘의식의 확대’란 혼자서 찾아야 하는 동기다.”
-어떤 과정을 통해 소설을 쓰는가.
“나는 소설의 결말을 먼저 쓴다. 위대한 발견을 모티프로 삼아 소설화하는 것이다. 발견과 관련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모은 뒤, 그 발견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이야기로 만든다.”
-소설가가 된 계기는.
대학을 졸업한 뒤 르누벨옵세르바퇴르에서 과학전문 기자로 일했다.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상사와의 갈등, 동료이면서도 경쟁자인 관계, 부려야 하는 아랫사람과의 문제 등 위계질서의 압력 때문에 고통받았다. 이렇게 시달린 끝에 혼자서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나는 지금 유쾌하게 일하고 있다.”
-삶의 철학을 소개한다면.
“제대로 숨쉬는 것. 밝게 미소 짓는 것. 지금 이 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현재 구상 중인 작품은.
“올 가을 프랑스에서 단편집 ‘가능성의 나무’가 출간된다. ‘천사들의 제국’ 후속편인 ‘신들의 왕국’(가제)을 2003년에 펴낼 계획으로 작업 중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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