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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국민, 건강한 사회, 건강한 나라 /거북이마라톤 30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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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국민, 건강한 사회, 건강한 나라 /거북이마라톤 300회

입력
2002.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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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부터 진행 맡아온 이상용“1978년 5월21일 처음 시작한 ‘한국일보 거북이마라톤’이 300회를 맞는 동안 매달 셋째 주 일요일마다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 멤버가 40여명이나 됩니다.

서로 ‘형님’ ‘아우님’ 하는 단골 참가자들은 400명이 넘지요.”

‘한국일보 거북이마라톤’의 얼굴인 뽀빠이 이상용(李相瀧ㆍ59)씨는 21일 열리는 300회 대회를 앞두고 지난 24년을 행복한 표정으로 회상했다.

“어떻게 처음부터 거북이마라톤대회 사회를 맡게 됐으냐”는 질문에 그는 “‘일요일 새벽에 꼬박 일어날 수 있는 연예인이 너 밖에 또 있겠느냐’는 한국일보 친구의 권유 때문”이라고 싱겁게 답하고는 예의 사람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밤새 기차타고 대회 진행도

뽀빠이와 한국일보의 인연은 그보다 5년이 거슬러 올라간 1973년에 시작됐다.

당시 문화방송 ‘유쾌한 청백전’이란 프로그램 사회를 맡아 방송에 데뷔한 뽀빠이를 한국일보 자매지인 일간스포츠가 “학사출신 코미디언 첫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크게 소개하면서 그를 일약 유명연예인 대열에 합류시켰다.

그 후 뽀빠이는 미스코리아 지방대회 등 한국일보가 주최하는 행사 사회를 도맡아 했다.

“한국일보의 많은 행사 중에서도 특히 거북이마라톤은 그 당시까지 권위적 인상이 강했던 언론사가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신선한 시도라 애착이 컸다”는 뽀빠이는 “그 동안 어쩔 수 없는 해외ㆍ지방 일정 때문에 개근을 하지는 못했지만, 거북이마라톤은 20여년간 내 연예계 일정에 최우선 순위였다”고 말한다.

토요일 저녁 늦게 지방 행사를 마친 뒤 일요일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밤새 기차를 타고 온 날도 많았다.

“밤 기차를 타면 서울 영등포역에 오전 4시께 도착해요. 그러면 혼자 대회가 시작되는 남산 국립극장 계단에 앉아 날이 새기를 기다리죠. 돈 때문이라면 누가 그런 일을 하겠어요.”

▼정주영 회장도 기죽은 사연

거북이마라톤을 진행하는 또 하나의 재미는 매 대회마다 바뀌는 명예대회장과의 만남이다.

명예대회장은 그 당시 뉴스에 초점이 되는 사람이 맡게 되기 때문에 화제의 인물을 곁에서 지켜보며 그때 그때의 시류를 느낄 수 있기 때문.

믿기지 않는 말이지만, 뽀빠이는 2002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의 선전을 3월에 예견했단다.

“월드컵성공을 기원하는 의미로 정몽준(鄭夢準) 대한축구협회장이 명예회장을 맡아 열렸던 296회 대회의 참여 열기가 대단했던 걸 보고는 뭔가 이뤄지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는 가장 인상에 남는 명예대회장으로 고(故)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명예회장을 꼽았다. 91년 2월 영하 20도 가까운 날씨에서 치러진 164회 대회에 참가한 정 회장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7㎞ 구간을 완주했다.

기분이 좋아진 정 회장은 대회 참가자들 앞에서 “여기에 나보다 선배는 없을걸”이라며, 자신의 건강을 과시했다.

이때 장난기가 발동한 뽀빠이는 “정 회장(당시 76세)보다 나이가 많은 분은 주민증 들고 한번 앞으로 나와보라”고 했다.

그러자 20여명이 앞으로 나와 정 회장을 놀라게 했는데, 특히 그 중 정 회장과 동갑이던 한 참가자는 혹한 속에서도 반바지에 러닝셔츠 차림이어서 정 회장이 한동안 말을 잃었다고.

그날 정 회장은 20여명의 ‘인생 선배’들에게 따끈한 설렁탕을 대접했단다.

“명예대회장의 직업에 따라 대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요.” 뽀빠이는 가장 성황을 이뤘던 대회를 90년 초 서울시 모든 구청장이 모두 참가했던 대회로 기억한다.

“당시 구청장들이 경쟁적으로 세 과시를 하느라 참석자를 동원해, 2만명이 넘는 사람으로 남산이 꽉 찰 지경이었지요.” 반면 IMF체제 당시 시중 은행장들이 명예대회장을 맡았을 때가 가장 썰렁했다고.

▼한식구 같은 단골 참가자들

대회가 300회에 이르다 보니 이름은 몰라도 낯익은 얼굴들이 많다.

특히 1회 대회부터 간직해 온 참가확인카드를 행여 비나 땀에 젖을까 비닐로 싸고 또 싸서 가져와 대회 후 찍어주는 완주확인 도장을 꼬박꼬박 받는 ‘거북이마라톤 중독자’들도 40~50명 된다고. “이런 분들과 눈이 마주치면 나이가 팔순이라도 ‘형’이라고 부르지요.”

매회 수 천명에 달하는 참가자들이 모두 ‘거북이 가족’이다. 전국 어디서나 거북이대회에서 만났다며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이처럼 끈끈한 ‘거북이 가족애’가 이어지는 한 영원한 ‘거북이 사회자’로 남겠다는 것이 뽀빠이의 생각이다.

“아직도 이해 못하는 것은 열성 참가자들은 대부분 먼 거리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이라는 점이에요. 첫 대회 참가자가 400~500명 정도였어요.

그때 만해도 남산까지 오는 교통편이 변변치 못해 성남이나 응암동 등에서 버스를 4, 5회씩 갈아타고 와서 참가하는 사람들이 많았지요.

그런 분들이 대부분 단골 참가자가 됐어요. 그런데 정작 남산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아요.”

뽀빠이가 풀지 못한 의문점이 또 하나 있다. “걷기를 마친 후 열리는 행사에서 나눠주는 상품은 대부분 첫 참가자가 받아요. 반면 20여년을 개근하면서도 한번도 당첨되지 못한 사람도 많고요. 그게 인생인가 봐요.”

그래서 뽀빠이는 이번 300회 대회에서는 사회자의 직권으로 낯익은 단골 멤버들에게 상품을 나눠줄 작정이다.

▼다양한 이벤트 개발해야

300회 대회는 승용차가 상품으로 준비되고, 2002 미스코리아와 인기 연예인들이 참석하는 등 성대하게 치러진다.

게다가 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이 명예대회장을 맡고, 막강한 동원력(?)을 지닌 서울시 구청장들이 일제히 참가해 최대의 잔치가 될 전망이다.

뽀빠이의 각오도 특별하다. “사람들에게 건강과 웃음을 나눠준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이번 대회에는 참가자들이 더욱 즐겁게 걷고 달릴 수 있도록 배꼽 잡는 레퍼토리를 많이 준비해 놓았습니다.

경사스러운 날이니 만큼 흥겨운 축제마당을 만들어야죠.”

또 300회를 맞아 “거북이마라톤이 지금까지의 전통을 계속 발전해 나가려면, 상품 보다는 참가자들이 골고루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즐거운 이벤트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며 “생활체육의 불모지였던 70년대 걷기대회를 창안했던 ‘참신한 발상’과 만년 적자인 행사를 우직하게 지켜온 ‘뚝심’ 등 한국일보 정신을 다시 한번 발휘하면, 거북이마라톤이 훨씬 알찬 대회로 성장할 것”이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이상용 약력

▦1963년 대전

▦대전고·고려대 졸

▦육군 ROTC 장교

▦KBS라디오 ‘위문열차’ KBS TV ‘모이자 노래하자’ KBS TV ‘출발 동서남북’ KBS TV ‘전국노래자랑’ MBC TV ‘우정의 무대’ ‘인생은 아름다워’ 등 진행 및 사회

▦사회복지법인 한국어린이보호회장

▦뽀빠이 장학금 전달 2,224명, 심장병 어린이 수술 566명

▦결식아동 도시락싸주기운동, 노인 밝은세상 보여주기운동 진행

■거북이마라톤史/장소·때 25년간 '한결'

1978년 5월21일 ‘한국일보 거북이마라톤대회’대장정의 출발은 바로 우리나라 걷기운동의 시원(始原)이다. 이후 24년간 299회를 치르며 쌓여온 대회거리는 총 2,093㎞에 참가 연인원이 무려 100만명. 이들의 총 보행거리를 계산하면 지구를 25바퀴 정도 돈 거리인 700만㎞가 된다.

대회가 회를 거듭할수록 인기를 끌어 온 이유는 무엇보다 단순하고 쉬우면서도 몸과 마음으 건강에 가장 효과가 큰 걷기운동이라는 점 때문이다. ‘건강한 국민은 건강한 사회, 건강한 나라를 만듭니다.’를 모토로 내건 대회는 첫 대회 알림에서 “이 대회는 뛰는 대회가 아니라 걷는 보행대회이며 바쁜 시민이나 운동할 기회가 적은 시민들도 서로 어울려 자연스럽게 참가할 수 있도록 마련 된 것”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행사규모는 커졌어도 대회일정은 처음 대회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때=매달 셋째 일요일 오전 9시, 코스=국립극장앞 출발→남산순환도로→식물원앞→팔각정→국립극장앞, 자격=보행에 지장없는 시민’. 1회 대회때 한국일보 사고(社告)에 나간 이 대회요강은 출발시간이 오전7시로 당겨졌을 뿐 지금껏 그대로다.

특히 남산순환도로를 따라 걷는 대회코스 7㎞는 자연환경이 쾌적할 뿐 아니라 평지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각 3분의1씩 돼 있어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감성순화와 운동효과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도심 최적의 길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처음부터 누구에게나 문호를 활짝 열었던 덕에 거북이마라톤길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한 모두가 격의없이 이웃처럼 어우러지는 드문 화합의 장이 됐다. 그동안 대통령 영부인을 비롯한 정·관·재계 인사들과 유명 연예·체육인들이 보통시민들과 자연스럽게 교감을 가졌다.

대회 시작 이듬해에는 이일구(李逸求)씨가 노랫말을 쓰고, 신방호(申邦浩·중학교사)씨가 곡을 붙인 ‘거북이행진곡’이 공식 대회가로 채택됐으며, 1992년 1월 대구시민 거북이마라톤대회로, 같은해 5월에는 부산시민 거북이마라톤대회로 확산됐다.

‘화제의 인물’들도 많았다. 대회 15주년을 맞은 해인 93년에는 당시 84세인 최사용(催思鏞)옹이 첫회부터 한번도 빠지지 않고 개근해 특별선물을 받았고, 대회 20돌인 98년엔 아들 손자 3대와 10년을 하루같이 참여해온 당시 89세의 김유찬(金裕贊)옹이 축하를 받았다.

300회를 맞은 한국일보 거북이마라톤대회는 24년 전 첫 대회 첫 발걸음을 떼던 때의 마음을 그대로 간직한 채 400회, 500회를 향한 또 다른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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