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공산당 지도부는 매년 여름이면 중요한 안건을 논의하기 위해 베이징(北京) 동쪽 해변 베이다이허(北戴河)에서 비공식 회의를 갖는다.다음주부터 열리기 시작하는 베이다이허 회의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것은 장쩌민(江澤民) 국가 주석이 최고 권력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이다.
중국 지도부에서 후계 문제가 공식으로 거론된 적은 한번도 없지만 그 동안 해외 언론을 통해 올 가을 지도부 교체가 기정사실처럼 여겨진 상황이어서 江 주석의 지위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1989년 이후 13년째 중국 권력의 정점에 있는 江 주석은 올 가을 5년 만에 열릴 중국 공산당 제16기 전국대표대회(16大)에서 당 총서기 및 중앙 군사위 주석을 내놓고 2003년 전국인민대표자대회에서는 국가 주석에서 물러날 전망이었다.
후임에는 주석 겸 당 총서기를 후진타오(胡錦濤) 부주석이, 총리를 원자바오(溫家寶) 부총리가 맡는 것이 유력했다. 전인대 상무위원장에는 리루이한(李瑞環) 상무위원 설이 파다했다.
하지만 최근 중국 관영 언론의 보도는 분위기가 다르게 흘러가고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일제히 江 주석의 ‘3개 대표 이론’을 강조하고 5월 31일 그의 당교(黨敎) 연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업적을 추켜 세우고 있다.
인민일보의 한 중견 기자는 “江 주석은 이번에 물러나지 않고 한 차례 더 연임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江 주석의 유임이나 수렴청정 가능성은 지난해 당 중앙군사위 위원들의 유임 요구 탄원서가 시발이다. 최근 들어 군 고위층은 물론 국무원 각 부처 책임자, 지방 지도자들까지 집권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한 중국 전문가는 “江 주석이 최근 중국을 방문한 프랑스 외무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유임 뉘앙스를 풍기는 언급을 했다”며 “江 주석이 계속 최고위직을 고집하거나 영향력 행사를 시도할 경우 권력 이양 문제가 복잡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의에서 당 총서기 밑에 제1 부총서기와 부총서기를 두는 부총서기제 도입 여부를 논의하는 것도 권력 이양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이 안이 통과할 경우 16大에서 장쩌민은 당 총서기에 유임되고 향후 5년 임기 중에 총서기직을 부총서기에 넘겨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의 한 간부는 “베이다이허 회의가 권력의 방향을 가늠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江 주석의 행보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그는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16大를 준비하면서 지방 31개 성(省)ㆍ시(市) 당정 지도자급 인사를 추종자 중심의 지지도에 따라 선별 임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올 상반기에는 군장성 7명을 상장(上將ㆍ대장)으로 승진시켰다. 장완녠(張萬年), 츠하오톈(遲浩田) 등 70대 군 원로들도 동료 의식을 느껴 江 주석이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중앙 군사위 주석직을 유지하도록 종용하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홍콩 일간 명보(明報)는 최근 당내 정치국원들과 군사위 고위층들이 江 주석의 전면 퇴진을 만류하고 있으며 덩샤오핑(鄧小平) 선례에 따라 후임자 등장을 도와 주되 일정 기간 돌봐 줘야 한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江 주석은 베이다이허 회의에 이어 열릴 16大에서 자신의 핵심 이론인 ‘3개 대표 이론’(공산당이 중국 선진사회 생산력 발전과 선진 문화 창달, 인민의 근본 이익을 대표한다)이 당장(당헌)에 명기되면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 반열에 올라서 더욱 입지를 굳힐 전망이다.
베이징=송대수특파원
dssong@hk.co.kr
■내정된 후계자 권력승계 한번도 없어
장쩌민 주석의 유임설이 무게를 더하면서 후진타오(胡錦濤) 부주석의 세대 교체 승계 작업도 짙은 안개에 가려졌다.
중국 정치사에는 1949년 중국 공산 정권 수립 이후 53년 동안 후계자로 내정된 사람이 정상적으로 직위를 승계한 일이 없었다. 중국 정치는 아직 제도보다는 사람이 좌지우지하는 인치(人治)여서 자리가 모든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
마오쩌둥(毛澤東) 시대 2인자로 지목된 류샤오치(劉小奇), 毛의 후계 지명을 받은 화궈펑(華國鋒)이 그랬고 덩샤오핑(鄧小平) 시대 일찌감치 후계자로 양성되던 후야오방(胡耀邦)과 자오쯔양(趙紫陽) 당 총서기도 1986년 대학생 시위와 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로 실각했다.
毛 시대 린바오(林彪), 펑더화이(彭德懷) 등은 권력 투쟁 과정에서 목숨을 잃거나 실각했다. 鄧이찍어 놓고 江 주석이 육성한 胡 부주석이 원만히 권력을 승계할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베이징=송대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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