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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친인척 비리의 싹

입력
2002.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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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2월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아 광복회에서 볼썽 사나운 ‘자리싸움’이 벌어졌다.그해 5월 임기만료로 회장직에서 물러난 권쾌복씨가 재선출되자 회원 사이에서 강한 불만이 제기됐다.

이에 보훈처가 나서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않은 것’이라며 권씨의 회장선임에 대해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법정싸움 끝에 그해 9월 원로 애국지사인 안춘생 선생을 회장직무대행에 선임하는 것으로 일은 일단락되는 듯 했다.

그런데 한달도 채 못 가서 ‘광복회장’ 자리가 또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이번에는 국회 정무위의 국정감사장에서 여야 의원이 난투극을 벌였다. 한나라당의 이사철 의원이 보훈처장에게 “주변에서 김 대통령의 사돈에게 광복회장을 맡으라고 한다는데 보훈처가 나서서 말려달라”라고 주문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 의원이 “전두환 정권 시절 대통령의 장인이 노인회장을 맡아 말썽이 난 적이 있다”고 상기시키자 여당의원들이 들고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이 의원의 말은 오래지 않아 사실로 확인됐다. 그로부터 석달 뒤인 1999년 1월 김 대통령의 사돈인 윤경빈 옹이 14대 광복회장에 선출된 것이다.

며칠전 김 대통령이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가진 오찬석상에서 “아들 문제에 대해 보고 받지 못했다”고 한 것을 보고 당시의 ‘광복회장 해프닝’이 떠올랐다.

물론 윤옹이 광복군에 입대해 광복군 총사령부 부관으로서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애국지사이므로 광복회장이 될 자격이 있다는 말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그는 김 대통령의 장남인 김홍일 의원의 장인이다. 광복회장의 자격을 갖추었다 해도 최소한 김 대통령의 재임기간 중에는 광복회장이 되지 말았어야 했다.

그때 그 일을 보고 “언젠가 김 대통령도 친인척 문제 때문에 고생할 것”이라고 예언한 사람도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신호탄이었다. 대통령의 친인척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수많은 ‘청탁자’들에게 ‘OK’ 사인을 보낸 작은 사건이었다.

이뿐이 아니다. 김 대통령은 또 김홍일 의원 문제에 관해 “내 자식이지만 선출직이니 본인이 판단해 처리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의원이 국회에 진출했던 1996년, 김 대통령의 측근인 권노갑씨가 지역구를 물려준 것을 놓고 ‘지역구민의 뜻에 따라 선출된 국회의원’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그 시절 김 대통령은 야당에 몸담고 있었기에 덜 비난을 받았을 뿐이지 사실상 자신의 장남을 국회의원에 ‘임명’했던 것이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차남인 김홍업씨에 대해서는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보면 왜 친인척 비리가 생겨났는지 금세 알 수 있다.

군대 제대 이후 아버지의 수행비서로 정치에 몸담은 홍업씨는 선거기획사를 설립, 1997년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 때까지 줄곧 아버지를 정치적으로 도운 참모였다.

그런 차남을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아태재단의 부이사장 자리에 앉혔으니,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될지 뻔한 일이었다.

이권청탁 등을 위해 홍업씨 주변에 몰려드는 사람은 그렇다 치고 국정원장들마다 그에게 사비를 털어 용돈을 주었다는 것은 더욱 놀랄 일이다.

김 대통령은 그들에게 돈을 받은 아들을 나무랐지만 실은 돈을 준 사람을 탓했어야 한다.

왜 대통령의 아들에게 돈을 주었는지는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 국민이라면 다 알고 있다.

우리의 정치문화에서는 대통령의 친인척이 다른 사람에 비해 오히려 ‘불이익’을 당해야 하는 것이 정답이다.

5년 전 누구보다도 ‘김현철씨 비리’의 덕을 많이 본 김 대통령이 이 점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 안타깝다.

그런데도 무턱대고 자신의 친인척을 두둔하고 챙겼으니, 결국 비리의 싹은 김 대통령 자신이 키운 셈이다.

친인척 비리의 근절을 위한 백가지의 특별법보다 대통령 한 사람의 마음가짐이 더 중요한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신재민 논설위원

jm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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