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제는 미국의 기업경영 방식을 전혀 바꿔놓지 못했다."(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15일자) "1달러=1유로시대의 개막은 미국식 신경제를 묻어 둘 관의 두껑을 덮는 마지막 망치질이다."(데이비드 블룸 HSBC통화전략가) 미국발(發)세계 경제 불안을 바라보는 경제 전문가들의 우려다. 신경제를 표방하면서 10년 장기 호황을 누려오던 미국 자본주의가 일대 기로에 서 있음을 알리는 비상 사이렌이다.1991년부터 시작된 미국 경제의 호황은 2000년 말까지 113개월 간이나 지속됐다. 기존 경제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런 현산을 두고 미국은 신경제의 발며을 자축했다. 정보기술(IT)의 발전에 따른 생산성 혁명과 노동시장의 유연성 드응로 고성장과 저물가의 '기막힌 동거'가 시작됐다는 자신감이었다. 신경제에서는 경기주기마저 통하지 않는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었다. 아직도 신경제의 부활을 기다리는 경제전문가들도 적지않다. 올초 미국 경기가 가파른 회복세를 보이자 신경제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주장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회계부정 스캔들과 달러 추락을 보면서 전세게 투자자들은 신경제가 사상 최대의 신기루에 불과했다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신경제의 요람인 실리콘 밸리에는 아직도 '닷밤(Dot-Bomb,닷컴 기업의 무더기 도산)'망령이 떠돌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지난 3월 말까지 문들 닫은 기업은 806개.새로운 기술이나 수익 모델을 찾지 못해 사활이 관건인 IT기업들에게 신경제의 재도약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오히려 과잉 시설자의 거품을 걷어내지 못한 IT분야는 경기회복에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신경제의 대변자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겼던 생산성 향상도 허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미국의 생산성 증가율은 96년 이후 연 평균 2,5%. 경제 전문가들은 이 같은 성장률이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완전히 새로운 경제상황이라고 단정할 정도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생산성 혁명이 지나친 가격경쟁과 과잉투자로 인해 기업의 순익증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 부진한 기업실적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생산성 향상이 미국 경제의 견고한 회복을 견인할 것으로 믿지만 일본도 90~91년에는 미국만큼 높은 생산성 증가를 누리다가 장기 불황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신경제와 호황이 신기술이 아니라 민간 소비와 해외 자본의 힘에 의존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에 따르면 미국 국민의 40%가 1만 달러 이상을 미국 주식시장에 투자하고 있다. 주식호황에 힘입에 90~99년 미국 민간가계의 자산은 44조 달러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신경제 붕괴를 처음붙 예견했던 모건스탠리의 스티븐로치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신경제가 죽와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부의 효과를 성장엔진으로 삼으면서 결과적으로 정보기술 부문에서 기업들외 과잉투자를 누적시키는 우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97년 미국으로 유입된 달러 자금은 총 2,540억 달러로 1980년대 경재 성장기의 두 배에 이르렀다. 지난해에는 외국계 자금이 4,550억 달러가 유입됐다. '신경제에서는 해가 저물지 않는다'는 매직에 도취된 국내외 자본들이 미국 주식시장에 몰렫르면서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달러 가치는 50% 이상 급등했다.
상황은 급변했다. 주가급락과 분에 넘친 소비의 후유증으로 미국 개인 파산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16일 미국 경제의 버팀목 역하을 해온 소비자들이 마침내 비관적 전망을 보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전했다.
미국 번영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강한 달러의 위세는 연일 추락하고 있다. 국제 자본의 미국시장 이탈도 가속화하는 추세다. 미국의 국내 저축은 1.6%에 불과하다.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미 부채의 40%, 미국 기업채권의 24%, 미국 주식의 13%를 보유하고 있다. 국제 자본의 이탈은 미국 경제의 추진력을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변수가 될 전망읻.
세계화의 전도사임을 자처할 당시 미국은 신경제가 정직성과 투명성이 뒷받침된 미국의 선진 시스템만에서만 가능하다고 자부했었다. 그러나 신경제의 무한성장 신화를 포장하기 위해 미국 기업들은 회계부정을 저질럿고 신경제의 최대 동력이라 찬사를 보냈던 스톡옵션은 탐욕으로 얼룩진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투명경영,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독립적인 이사회, 객관적인 외부기관의 회계감사 등 '주식회사 미국'을 지탱하는 3대축이 모두 무너졌다고 자책했다. 신경제로 대변되는 미국 자본주의의 종언을 선고한 셈이다.
김병주기자
■신경제란
90년대 미 경제의 부흥과 10년 부흥을 상징하는 ‘신경제(New Economy)론’은 이미빛이 바랬다. 지금은 거품의 대명사처럼 쓰인다.
신경제는 생산성 향상으로 경기순환이 소멸하고, 불황과 인플레가 없는 성장이 계속되는 시대라고 정의된다.
정보기술(IT)혁명으로 개발, 판매뿐 아니라 재고관리 등 모든 생산과정의 효율이 높아져 시장 불균형에 따른 불황 사이클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98년 클린턴 정부는 IT산업이 성장률의 3분의 1에 기여했다고 발표하고 다음해 ‘디지털 경제 2000’ 보고서에서 신경제 시대의 진입을 선언했다.
하지만 지난해 미국이 경기후퇴를 겪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근거를 잃었다. 실제로 90년대 노동생산성의 평균 상승률은 1.2%로 80년대 1.1%, 70년대 1.2%에서 나아지지 않았다.
특히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신경제가 “과잉투자때문에 오래 꺼지지 않는 거품이고, 렌즈 조리개를 조절해 실물보다 커 보일 뿐”이라며 줄곧 비판해 왔다.
정계에선 설계자인 제임스 루빈 전 재무부 장관이 월가 유대계 기업 골드먼 삭스 출신임을 들어 투자를 끌어들이려는 금융자본의 '조작'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유승우기자
swyoo@hk.co.kr
■그리스펀 낙관론 근거는
달러와 주가의 폭락에도 불구하고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미국 경제를 여전히 견실하게 보았다.
그린스펀 의장이 16일 상원금융위원회에서 증언한 미국 경제에 대한 전망은 성장과 소비 등 실물경기는 흐트러짐없는 성장궤도를 밟고 있으나 주가 폭락이 경기 회복과 성장 속도를 지연시킬 수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올해 경제성장률을 당초 2.5~3% 에서 3.5~3.75%로 대폭 상향조정하고 내년 말까지 3.5~4% 대의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한 발언은 분석가들조차 예상치 못했던 매우 낙관적인 관측이었다.
실업률도 2003년까지 지금의 5.9%에서 5.25~5.5% 수준으로 낮아지고 인플레 역시 내년까지 거의 조짐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주가 폭락을 제외하고는 미국 경제가 순항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다는 자신감을 피력했다.
달러에 대한 유로화 강세는 환율 변동상의 정상적인 흔들림일 뿐 “대수롭지 않다” 는 평가를 내렸다.
주목할 것은 최근의 주가 폭락을 보는 그린스펀의 시각이다. 그는 주가 폭락이 경기 성장을 지연시킬 수 있는 요소로 보았으나 미국 경기가 주식시장 침체로 인해 궤도를 이탈할 것으로는 보지 않았다.
개인 소비심리가 나빠지고는 있으나 주식시장의 불안정성이 해소되면 저금리 등에 힘입어 곧 신뢰도가 살아날 것으로 예측했다. 최근의 주식시장에 대한 그의 불만은 주가가 미국의 경제여건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비정상적인 경기외적 요인에 의해 횝쓸리고 있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린스펀은 이날 증언에서 “탐욕” 을 수 차례 언급하며 최고경영자(CEO)의 비도덕성, 회계관행의 타락이 투자자들의 이탈을 부르고 결국 주식시장의 파행을 불렀다고 비판했다.
변호사, 기업 이사회ㆍ감사, 월 스트리트 분석가, 신용평가기관 등 겹겹이 둘러쳐져 있는 신용감시 장치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신용파국이었다는 설명이다.
그가 보는 정책입안자들의 잘못은 최고경영자가 정직할 수밖에 없도록 금융당국이 제 역할을 하고 있으리란 안이한 생각을 했다는 데 있다.
그린스펀 의장은 주식시장이 신뢰 위기에서 벗어나면 경기 회복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근거로 지난해 경기침체로 쌓인 기업재고가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는 점과 신규주택 수요가 사상 최고치를 유지할 만큼 개인 소비심리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특히 지난해 경기침체의 충격을 가장 극심히 겪었던 제조업 분야가 다시 팽창하고 있다는 데서 희망을 찾았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