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할 때였다.주말에 집에서 꽃밭에 물을 주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FBI(연방수사국) 요원의 방문을 받았다.
영화나 TV에서 보던 날렵한 FBI 요원과는 달리 늙수그레한 모습에 마음씨 좋게 생겨서 마음은 놓였으나 방문의 목적이 꽤나 궁금했다.
알고 보니 내가 살던 집에 먼저 거주했던 전 입주자가 국무부의 직원으로 채용될 예정인데, 그 사람에 대한 뒷조사를 하려고 나타난 것이었다.
■ 점잖게 “00씨를 아느냐”고 묻기에 “잘 모른다”고 했는데도 질문공세는 끊이지 않았다.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느냐”, “그 사람과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 누구인 것 같으냐”는 등등 꼬치꼬치 캐묻는데 까닭 모를 반감(反感)과 함께 전에 살던 사람을 보호해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계속 “잘 모르겠다”는 대답으로 일관하자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은 FBI 요원은 옆집으로 발걸음을 옮겨 초인종을 눌렀다.
■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별로 높지 않은 직위에 채용되는 데도 그렇게 일일이 뒷조사를 하도록 돼있다는 것이다.
의회의 인사청문회 대상이 되는 수많은 고위 공직자들에 대해서는 아예 전담반까지 구성해 상원이나 언론에서 트집잡을 만한 내용에 대해 샅샅이 훑는다.
이 바람에 대통령이 새로 취임해도 행정부를 비롯한 주요 포스트의 인선이 완료되려면 몇 달씩 걸리곤 한다.
특히 공직 경험이 없었던 사람을 발탁하는 경우에는 사전검증 절차에 더욱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 우리나라도 과거 독재정권 시절 공무원은 물론이고 심지어 신문기자의 채용에도 정보기관에서 뒷조사를 했던 적이 있다.
당연히 사상문제나 반정부 활동 여부가 관심의 대상이었을 뿐 자격 여부는 뒷전이었다.
어쩌면 그 시절의 ‘왜곡된 뒷조사’ 때문에 뒷조사 자체에 대해 많은 사람이 거부감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개각 때마다 전력시비 등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니 혹시 청와대마저도 뒷조사를 꺼려 마땅히 할 일을 안하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
신재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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