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그룹인 삼성은 원ㆍ달러 환율이 100원 떨어지면 연간 1조원의 이익이 고스란히 증발한다. 올 경영목표를 워낙 보수적(연평균 환율 1,150원, 순익 9조원)으로 세운 덕에 환율폭락의 충격은 적은 편이지만, 만약 연초 1,300원대 환율이 계속 유지됐다면 삼성의 금년도 그룹순익은 10조원을 가볍게 넘었을 것이다. 간판 산업인 반도체 가격은 이달들어 모처럼 상승랠리를 타고 있다. 하지만 환율하락분을 상쇄하면 실제론 남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관련기사 3면
미 달러화 약세가 가져온 환율급락(원화가치 급등)의 충격이 경제 전반에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환율하락은 물가압력해소, 대외지불부담 경감, 달러화 표시 국민소득의 증가 같은 이점도 있지만, 당장은 아무래도 짐이 큰 게 사실이다. 환율이 떨어져 수출차질이 확대되면 고용불안, 소득감소, 투자부진, 성장률저하의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17일 92개 주요 수출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무역협회 실태조사결과, 환율하락으로 93.5%의 기업이 수출채산성 악화를 예상했으며, 이중 15.2%는 심각한 적자수출에 직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고정환율(1달러=8.28위안)의 중국이 이번 달러화의 약세로 사실상 평가절하 효과를 누림에 따라 응답대상기업의 83.9%는 세계상품시장에서 중국에 대한 가격경쟁력이 약화했다고 밝혔다.
현 추세라면 원ㆍ달러 환율은 더 떨어질 공산이 크다. 국내외 전문가들도 원고(高) 현상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수출업계는 인위적으로라도 환율지지를 촉구하고 있지만, 외환당국의 역할은 하락속도 조절 정도이지, 시장흐름 자체는 역류할 수도 없고, 역류해서도 안된다. 환율을 바꾸지 못한다면, 기업 스스로 급변하는 외환환경에 적응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환란이후 4년반 동안 국내 기업들은 고환율의 단맛에 길들여져 왔던 게 사실이다. 이제 고환율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는 만큼 기업들도 변화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지금까지의 작업이 부실을 털어내는 구조조정이었다면, 이젠 ‘1달러=1,000원’ 아니 그 이하 환율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새로운 구조조정이 필요한 것이다.
LG경제연구원 이지평 연구위원은 “도요타 소니 같은 일본기업들은 기술력과 원가절감, 세계경영으로 1980~90년대 두 차례의 슈퍼엔고(高)를 넘겨 1달러=70엔에도 버틸 수 있는 경쟁력을 갖췄다”며 “국내 기업들도 환율에 관계없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지탱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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