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동양의 신화] (11)죽음과 생명의 여신 서왕모(西王母)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동양의 신화] (11)죽음과 생명의 여신 서왕모(西王母)

입력
2002.07.17 00:00
0 0

인류를 창조하고 지구의 재난을 다스리기도 했던 여와(女 )는 여신 중의 여신으로서 위대하고 엄숙한 이미지의 화신이다. 그렇기에 여와는 오히려 우리가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그런 신이 아니다. 폭군 주왕(紂王)이 감히 이 여신에게 애욕을 품었다가 자신 뿐만 아니라 나라까지 멸망 당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다.범접할 수 없는 거룩한 여신 여와는 인류 창조와 구원의 큰 업적을 이룬 후에 높고 아득한 하늘 저편으로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사라져 갔다. 실제로 이러한 창조의 신들은 민중들 에게 그다지 인기가 없다.

그들에게 인기가 있는 신은 창조와 같은 거창한 일 보다 삶과 죽음에 관여하거나 재물과 행운을 가져다 주는 등, 생활에 밀착된 기능을 하는 신인 것이다. 후세에 여와도 고매(高媒)라는 결혼의 신으로 이름과 기능이 바뀌어 숭배될 수 있었다.

이들 창조의 신은 심지어 잊혀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종교학자인 엘리아데(M.Eliade)는 이러한 신들을 ‘사라진 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렇다면 거룩하고 엄숙한 창조의 여신 여와가 인간들의 뇌리에서 점차 잊혀져 갈 때, 그들에게 보다 친근하고 다정한 모습으로 새롭게 다가온 여신은 누구였을까?

바로 서왕모(西王母)이다. 그러나 서왕모의 원시적인 모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서양 여신처럼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다 ‘산해경(山海經)’에는 서왕모에 대한 여러 기록에 의하면 서왕모는 인간이라기보다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모습을 한 여신이다.

서왕모는 중국의 서쪽 끝에 있는 신령스러운 곤륜산(昆侖山)에 산다고 했다. 곤륜산은 신들의 거처로 유명한데 서왕모는 이 산의 정상에 있는 요지(瑤池)라는 아름다운 호숫가에 살고 있다고 하기도 하고, 옥이 많이 쌓여 있는 옥산(玉山)이라는 곤륜산의 한 봉우리에 살고 있다고도 했다.

서왕모의 모습이 어떠했냐 하면, 크게는 사람 같기는 한데 표범의 꼬리와 호랑이 이빨을 했고, 쑥대처럼 헝클어진 머리에 비녀를 꽂았다 하니, 우리가 상상하는 여신의 모습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서왕모는 휘파람 부는 일을 즐겼다고 했다. 이것도 지금 우리 관점에서 보면 아리따운 여신이 지닐 고상한 취미는 아닌 듯 싶지만, 사실 고대 중국에서 휘파람 불기는 어엿한 음악의 한 갈래였다. 중국에는 휘파람의 악보 곧 소보(嘯譜)까지 전해오고 있다.

어쨌든 기괴한 모습의 서왕모는 그래도 여신이었으므로 그녀를 위한 시중꾼들이 있었다. 시중꾼들은 곤륜산 서쪽 삼위산(三危山)이라는 봉우리에 살았는데 인간이 아니라 세 마리의 파랑새(靑鳥)였다. 이 새들은 몸 빛은 푸르지만 붉은 머리에 검은 눈을 하고 있었고, 주로 서왕모의 음식을 조달하는 일을 맡아 했다.

이 파랑새들 뿐만이 아니었다. 세발 달린 새가 한 마리 또 있었는데, 이 새는 그 밖의 잔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우리는 이 시중꾼 역시 귀여운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만만치 않은 존재임을 알 수 있다. 호랑이 이빨을 한 서왕모가 풀이나 죽 같은 것을 먹을 리는 없겠고, 결국 육류가 주식일텐데, 그것을 조달하는 파랑새들이란 실상 독수리나 솔개 같은 맹금류(猛禽類)에 속하는 새이기 십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서왕모는 과연 그 모습답게 하는 일도 살벌하기 그지 없었다. 그녀는 하늘에서 내리는 재앙과 돌림병과 같은 무시무시한 일들과 더불어 코를 베거나 손발을 자르는 등의 다섯 가지 잔인한 형벌에 관한 기운을 관장하는 여신이었던 것이다.

왜 서왕모는 이렇게 살벌한 일을 담당하는 여신이 되어야만 했을까? 그것은 고대 중국에서 서쪽이 지니는 상징적인 의미 때문이다. 서쪽은 해가 지는 곳으로서 어둠과 죽음의 땅이다. 그래서 재앙과 형벌 등 죽음과 상관된 일들을 서쪽의 여신 서왕모가 맡게 된 것이다.

방위에 대한 이러한 상징적인 의미는 후세에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의해 더욱 정교하게 체계화된다. 가령 우리 나라에서도 조선시대에 한양(漢陽)의 서쪽에는 감옥과 처형장 등의 기관을 배치하였다. 은평구 서쪽에 위치해 있었던 고택골이라는 곳은 처형장이었다. 속어로 “골로 간다”라든가 “골로 보낸다”라는 등의 표현은 이곳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서왕모는 음산한 죽음의 여신만은 아니었다. 죽음을 관장했기에 그녀는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힘, 곧 영생과 불사의 능력을 지닌 생명의 여신으로도 아울러 간주되었다. ‘산해경’에 의하면 서왕모가 살고 있는 곤륜산에는 불사의 열매가 열리는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불사수(不死樹)의 주인은 물론 서왕모일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후일 영웅 예( )가 불사약을 청하러 왔을 때 인심 좋게 하사하기도 한다. 프로이트가 일찍이 말한 바 있는 우리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삶의 본능인 에로스와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를 서왕모 신화는 이렇게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과 생명의 여신 서왕모는 후세로 갈수록 초기의 살벌한 죽음의 이미지는 엷어지고 온화한 생명의 이미지가 부각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름답고 매력적인 자태로 거듭난다. 주(周)때 목왕(穆王)이라는 임금이 여덟 필의 준마가 이끄는 수레를 타고 서쪽으로 여행을 떠나 곤륜산에 이른 적이 있었다.

이 때 왕은 젊고 예쁜 여신 서왕모를 만나 사랑에 빠져 고국에 돌아갈 일을 잊었다 한다. 한(漢)에 이르러 서왕모는 거의 영생과 불사의 여신으로만 숭배되어진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기원하면 불사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확신하였다. 사당과 무덤의 벽화에 그녀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이다. 한 사람들은 또한 그녀가 독신인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래서 동왕공(東王公)이라는 남편 신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이것은 처녀신이었던 여와가 후일 복희(伏犧)와 부부관계에 놓이게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적 관념의 침투가 가져온 결과이기도 하고 음양오행설에 의해 짝을 맞추려는 의도의 산물이기도 하다.

서왕모의 열렬한 팬은 한무제(漢武帝)였다. 기원전 4, 5세기경에 이루어진 작자미상의 소설 ‘한무제내전(漢武帝內傳)’에 의하면 한무제는 사당을 짓고 치성을 드리는 등 갖은 노력을 다하여 서왕모의 강림을 기원하였다.

지성이면 감천이었던지 마침내 칠월 칠석날 서왕모가 아홉가지 빛깔의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천상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삼십 세쯤 되어보이는 미녀였고, 두 명의 예쁜 시녀가 모시고 있었다. 아마 이 시녀들은 앞서의 파랑새들이 변신한 것이리라.

한무제가 불사약을 간청하자 서왕모는 불사의 복숭아를 내려주면서, 동방삭(東方朔)이 몇 차례나 자신의 궁궐에 와서 복숭아를 훔쳐갔노라고 책망한다. 원래 동방삭은 별의 정령이었는데 잠시 인간세상에 와서 한무제의 신하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먹어 오래 오래 살았기에 “삼천갑자 동방삭“이라는 말이 유행하게 되었다.

서왕모에 대한 숭배는 이후 당(唐)대에 이르러 다시 한번 크게 일어났다. 이 때에 서왕모는 주목왕이나 한무제 같은 고귀한 신분들이나 만날 수 있는 숭고한 존재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그녀를 통해 소원을 이룰 수 있는 보다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받는 여신으로 변모해 있었다.

시인들은 공공연하게 그녀에 대한 연애감정을 노래하기도 했고, 그녀를 사랑의 여신으로 찬미하기도 했다. 세 마리 파랑새 역시 이 때에 사랑의 메신저로서 애정시에 자주 등장하였다. 서왕모는 당시(唐詩)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조선시대 시인들의 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관음보살이 두각을 나타내기까지 서왕모는 중국의 가장 인기있는 여신이었던 것이다.

모태회귀적 본능인지 모르지만 인류에게는 여성성을 통해 구원받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단테에게 베아트리체, 기독교에 성모 마리아, 불교에 관음보살이 있었다면, 중국신화에는 서왕모가 있었다고나 할까? 서왕모를 통하여 불사의 경지에 이르는 일. 그 이상의 구원이 또 있을까?

/글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그림 =서용선 서울대 서양화과 교수

◎ 삼위산(三危山)

곤륜산에 속하는 세 개의 높은 산봉우리를 말한다. 단군신화에서 환웅 천왕이 강림한 곳도 삼위 태백(太白)이어서 흥미롭다. 지금의 중국 서북방 돈황(敦煌) 근처의 산이라는 설도 있으나 신화시대 중국의 영역은 그리 넓지 않았다.

‘산해경’이 동이계(東夷系) 종족의 옛 책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곤륜이나 삼위는 이 종족의 활동 무대였던 산둥 및 발해만 일대의 서쪽 지역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중국 학계에서는 서왕모가 동이계 종족의 형신(刑神)이었다는 설도 제기된 바 있다.

원래는 동이계 종족의 서쪽 지역신이었던 서왕모가 중국의 영토가 확대되면서 지금의 중국 서쪽 변방의 여신으로 변모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