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근 한국 현대사 집필을 위해 1970~80년대의 민주화 투쟁과 관련된 책들을 집중적으로 다시 읽으면서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착잡한 상념에 빠져 들었다.이른바 ‘동교동계’ 인사들이 20년 넘게 겪은 수난은 문자 그대로 형극(荊棘)의 길이었다.
고문을 비롯해 각종 탄압을 받은 걸 중심으로 보자면 이른바 ‘양김씨’라는 말조차 부당해 보인다.
김영삼씨가 겪은 수난은 김대중씨가 겪은 수난에 감히 비교할 바가 못되기 때문이다. 이런 비교는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인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읽는 이를 숙연케 할 만큼 초인적인 민주화 투쟁을 해 온 동교동계가 오늘날엔 불명예스러운 딱지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세상에 이런 비극이 없다.
나를 착잡하게 만든 건 동교동계에 대한 세간의 비판과 동교동계 인사들의 인식 사이엔 도저히 좁혀질 수 없는 엄청난 괴리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비단 동교동계 인사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닐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망정 과거 이 사회의 민주화와 개혁과 진보를 위해 험난한 투쟁을 한 모든 사람들이 그런 종류의 괴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동교동계 인사들이 자신들에 대한 세간의 비판에 몹시 억울해 하고 어떤 사람들에 대해선 배신감까지 느끼는 걸 인간적으로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20년이 넘는 그 긴 세월 동안 자신들의 젊음을 바쳤던 민주화 투쟁이 모독 당하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리라는 데에도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 이유야 어찌 되었든, 무슨 억울한 사정이 있건, 그들이 주도세력이 되어 만든 김대중 정권은 6·13 지방선거 결과가 잘 말해주듯이 거의 몰락한 상황에 처해 있다.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에 대한 국민적 분노도 극에 달해 있다. 이에 대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김 대통령 혼자만 책임져야 하는가?
동교동계 인사들이 과거 자신들이 투쟁한 세월만 기억하면서 ‘억울하다’고 말하는 건 온당치 않아 보인다.
“우리가 목숨 걸고 민주화 투쟁 할 때 일신의 영달을 위해 살던 사람들이 감히 우리에게…” 운운하는 식의 발상을 버리지 않는 한 그들은 영영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이른바 동교동 구파가 보이고 있는 보수성은 과연 이들이 민주화 투사였던가 하는 걸 의심케 하기에 족하다는 걸 잊어선 안될 것이다.
아무리 억울해도 책임져야 한다. 나는 동교동계 인사들의 명예는 지금 그들이 하고 있는 ‘자기 정당화’의 방식으로는 지켜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동교동계라는 말이 욕이 될 수도 있는 현실을 초래케 한 모든 책임을 지고 과거처럼 자기 희생적인 자세로 돌아가는 것이 모두를 위해서 좋은 일일 것이라 믿는다.
그게 진정한 명예회복이 될 것이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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