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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명달리의 '숲과 사람'

입력
2002.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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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산비탈에 잣나무 숲이 울창하다. 침엽수가 내뿜는 송진 향기에 코끝이 아리다.마을을 앞을 흐르는 계곡은 수량도 풍부하고 모래알을 셀 수 있을 만큼 맑다. 시냇물 소리가 요란하지만, 하루 종일 들어도 그 소리는 싫증나지 않는다.

계곡을 따라 가지런히 정돈된 층계 논이 있다. 우렁이가 논바닥 위를 기어 다닌다. 탐스럽게 자란 벼 포기 사이로 개구리들이 고개를 내밀고 가슴을 벌렁거린다.

배고픈 백로는 우렁이를 잡아 먹기 위해 논두렁을 어슬렁거리고, 배부른 녀석들은 소나무 꼭대기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명달리(明達里)의 칠월 풍경이다. 지난주말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의 권유로 서울대 환경대학원 CEO환경경영포럼 회원들의 생태산촌 탐방 버스에 동승했다.

난개발로 신음하는 경기도 일대에 이런 곳이 있는가 싶었다. 명달리는 통방산(해발 649m) 중미산(833m) 삼태봉이 겹겹이 둘러친 심산유곡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 농촌 문제를 다 안고 있다. 세계화의 충격, 젊은 층의 이농, 초등학교 폐교, 행락지로의 개발유혹 등등…

그러나 명달리 190여명 주민들은 그들의 미래를 생태산촌 마을에서 찾기로 했다.

잃어버린 우리 산촌의 공동체 모습을 되찾아 삶의 윤기를 찾고, 도시민에게 자연학습과 휴식의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경제적 활로를 열기로 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재정지원도 적잖게 확보했고, ‘생명의 숲’과 ‘생태마을 만들기’ 등 두 비정부 단체(NGO)의 적극적인 자문을 받고있다.

마을 사람들은 환경단체의 충고를 받아들여 자연순환에 기초한 마을 경제를 추구하기로 했다.

작년에 시작한 유기농을 올해 100% 확대했다. 화학농법대신 우렁이 농법과 오리농법으로 벼를 재배한다. 당연히 논에 개구리, 뱀, 백로가 찾아오는 먹이사슬이 되살아 났다.

개천이 오염되지 않아 산천어를 방생하여 기른다. 밤에 반디불이를 쉽게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농산물 값이 좋았다. 보통 쌀보다 50%이상의 값을 받았다.

그러나 불편한 것도 적잖다. 퇴비를 만들어야 한다. 화학비료나 제초제보다 효과가 느리고 일손도 많이 간다.

아무리 유기농 농산물이 값이 좋다고 하나 밖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돈벌이가 잘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생태학습 및 휴양지로서 도시민에게 자연을 서비스하고 그 반대급부로 소득을 올리는 방법에 희망을 걸고 있다.

정부가 지원한 돈도 그래서 도로 등 인공시설물이 아니라 생태환경 보강에 투입할 계획이다. 러브호텔, 노래방, 대규모 음식점 등은 피하기로 했다.

저급행락 문화를 수요자의 구미에 맞춰 제공하다가는 공동체가 파괴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연을 완벽하게 보전하여 건전한 도시인들이 찾는 산촌 생태문화를 만들겠다는 것이 명달리의 꿈이다.

차차 산림문화에 대한 수요가 명달리의 선택을 알아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생태 탐방에 참가한 사람들은 걱정했다.

명달리의 젖줄인 소유곡을 따라 마을 경계를 벗어나면 불도저와 포크레인 엔진소리가 요란하다. 계곡을 따라 별장과 식당이 들어서고, 숲이 울창한 산허리는 시루떡 잘려나가듯 하고 있다.

북한강 남안을 따라 양수리쪽으로 나오면 이런 공사현장은 더욱 대규모로 펼쳐진다. 밤은 러브호텔과 카페의 레온으로 불야성을 이룬다.

이곳이 2천만명이 목을 대고 있는 상수원인가 의심이 간다. 명달리 주민들은 과연 이런 난개발과 투기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을까.

21세기 인간은 거의 도시에서 살 것이다. 그러나 도시는 생명권에 절대적인 물과 공기 등 자연을 제공할 수 없다.

산림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 명달리의 실험이 그곳 주민의 일만은 아니다.

김수종 논설위원

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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